지난주에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워머와 장갑을 끼지 않고 외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 드디어 봄이 왔나보다. 그런데 남부지방의 양산 원동매화축제(0301-0303)나 광양매화축제(0307-0316)의 매화는 이제야 꽃이 시작한 듯하고, 구례산수유축제(0315-0323)의 산수유도 아직 절정기는 아니고 작년보다 늦다고 한다. 일기예보로는 이번 주 초반은 꽃샘추위라는데 아마도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이 아닐까? 아직 동계철수에서 대전 성북동집으로 복귀할 날짜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3월 말 쯤에는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아침 해가 유리창에 두어 번 반사되어 앞 건물의 안쪽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바로 우측에 있다.
겨우내 거실에 들여놓았던 화분을 다시 발코니로 내놓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짱구 우측의 테이블에서 화분을 모두 내놓으면 치워버리자고 한다. 최근 성북동집에 다녀올 때(0306) 스킨답서스를 올려놓은 간이의자를 가져 온 것도 이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겨우내 거실에 들여놓았던 고무나무를 우선 발코니에 내놓았다.
최근 성북동집에서 오던 날(0306) 매화 전지작업을 하며 잘라낸 매화 4줄기를 유리병에 넣어서 가져왔다. 꽃봉오리가 제법 커졌다.
대전 성북동집 마스코트인 선화는 지난겨울이 시작될 무렵 동계철수를 할 때 서울집으로 따라왔다. 환경이 좋은 서울집에서 겨울을 났는데 성북동집으로 복귀할 때 따라 나설지....
아내와 딸이 며칠 전에 화분 5개를 구입해 왔다. 집안이 한결 화사해졌다.
최근 성북동집에서 올 때(0306) 가져온 빨강머리 앤 그림
요즈음 아내가 며칠 동안 수를 놓아서 만든 가방이다. 원래 수놓기는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서 나라면 엄두도 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끈기가 대단하다.
당시 필름카메라 2대(Nikon FM+FM2)로 촬영하였다. 디지털카메라와는 달리 B셔터를 이용하여 기계식 릴리즈를 사용하였다. 알람기능이 있는 디지털 타이머로 노출시간을 재서 일일이 손으로 릴리즈를 눌렀다. 카메라에 잡광이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붉고 어두운 LED 손전등만 잠깐씩 켜서 촬영정보(촬영 시작시간+F값+노출시간+촬영대상+가로 및 세로 촬영 여부)를 일일이 기록하였다. 현재 촬영하고 있는 사진을 보는 것은 집으로 돌아와서 DP점 의뢰하여 필름의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칠 때까지 여러 날이 지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진 끝 부분에 있는 당시의 촬영정보 내용 중에서 (필름)번호는 추후 현상한 필름을 확인해서 추가 기록한 것이다. 디지털카메라에서는 자동으로 기록되는 정보지만 필름카메라에서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 것이다. 노출시간이 20~30분 이상 길면 기록하는데 다소 시간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어두운 상태에서 혼자 작성하기는 만만치 않았다. 유성우 사진처럼 노출시간이 짧으면 노출정보를 기록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디지털카메라와 달리 적정노출 여부를 촬영한 사진을 보면서 바로 확인할 수 없다. F값이나 노출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심해야 했다.
● 유성은 언제 어느 위치에 나타날지 모르는 것이 특징이다. 어쩌다가 촬영하는 화각 안에서 상당히 밝게 보인 유성도 노출시간이 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기도 한다. 요즈음(디지털카메라)에도 유성이 사진 귀퉁이에 조금 찍히기만 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24년 전(20011119)의 사자자리 유성우는 정말 대단했다.
한 달 전(20250125)에 손자에게 부탁하여 '작별하지 않는다'(한강 장편소설)를 구입하였다. 작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식은 계엄령(20241203) 사태 직후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지나갔다. 이런 와중에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와 눈(雪)에 관한 소설 '작별' 읽은 터라 제주 4·3사건에 대한 소설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싶었다. 어쩌다보니 TV 저녁 뉴스를 두 군데나 보는 등 엉뚱한데 정신이 팔려서 차일피일하는 사이에 책을 구입한 후 한 달이 지났다. 4월 3일 이전에는 독서를 마치리라 생각하고 책을 잡았는데 11일 만에 완독하였다. 전에 읽었던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앵무새도 등장하고 '작별'에서처럼 눈(雪)이 등장한다. 이제까지 읽어 본 소설들은 대부분 사건이 주욱 나열되는 단순한 구조였다. 아마도 책 읽는 속도가 느려서 단순한 구조가 아니면 전에 읽은 부분을 쉽게 잊거나 이해하기 힘들어서 피하지 않았을까? 사실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에는 많이 혼란스럽고 쉽게 닥아 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작별'처럼 눈(雪) 이야기가 나오고, '소년이 온다'에서 나왔던 제주에 사는 친구(인선)네 앵무새를 구하러 가는 것이 또 나오니 쉽게 접근이 되었다. 한강 작가에 대한 이런저런 동영상과 글을 본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329쪽의 장편소설이지만 마치 십여 권짜리 대하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책이라지만 2/3를 읽을 때 까지도 가끔 소개되기는 하였지만 분위기를 잡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전체를 읽을 후 제주 4·3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부분(216쪽)부터 끝까지는 내가 소설을 읽는 방식대로 메모를 하며 다시 읽었다. 궁금한 부분은 또 다시 읽기도 하였는데 다시 읽을수록 새로운 느낌이 나고 더 많은 공감을 받았다.
다른 소설에서 제주 4·3사건(1948)과 6·25전쟁(1950)에 대하여 따로 읽었다. 제주 4·3사건에 관련된 분들이 군경의 치안유지 명목, 보도연맹 가입, 서북청년단, 6·25전쟁 초기의 예비검속 등으로 학살당하였다. 희생자 가족들이 4·19혁명(1960) 후 유족회가 결성되어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최초 위령제를 지냈다고 한다. 다음 해 5·16 군사정변(1961) 이후 군사정권이 끝나고 1995년도까지 활동이 중단되었던 유족회가 다시 결성되었다고 한다. 친구(인선)의 아버지 쪽과 어머니 쪽의 가족이 당한 4·3사건 중심으로 기술하였으며, 4·19혁명이후 어머니가 외삼촌을 찾기 위한 노력에 대한 소설이다. 다양하고 광범위하지는 않지만 작가의 섬세한 표현,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상황을 인정하니 이렇게도 소설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제주도 방언으로 표현된 증언은 자세하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두 번 읽은 부분은 한층 이해가 되었다. 결혼하기 전에 어머니가 외삼촌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삼춘'이라 부른 것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원본으로 노벨상 수장자의 소설을 읽었다. 뿌듯하다.
요즈음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푹 빠져있다. 오랜만에 회의 참석 차 정장차림을 하게 되었는데 출발시간을 기다리며 책을 들었다. 직전에 한강 소설인 '소년이 온다'와 '작별'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네 앵무새의 죽음과 눈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취미로 별을 보기 시작한 것이 중학교 때이니 어언 60년이 흘렀다. 아직 개기일식은 보지 못하였지만 일식, 월식, 혜성, 유성우, 금성 일면통과, 토성식, 행성 접근현상 등 기획가 있을 때마다 참여하였었다. 십 수 년 전부터는 뜸한 상태 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인 사자자리 유성우(20011119) 필름을 스캔한 것이 2년 전(20230221)이다. 겨울철에나 시간 여유가 있는데 이제야 보정작업을 해서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있다. 1차분(20250309)에 이어 2차분이다. 필름 보관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흠집이 많아서 사진 하나를 보정하는데 보통 30~40분정도 걸린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직 3차분으로 20여장 남아 있다.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텐데....
불발현에서 본 사자자리 유성우는 60여년 전(중학교 다닐 때)부터 별을 보기 시작한 이후 운두령에서 본 헤일밥혜성과 함께 가장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당시 촬영하여 동네 사진관에서 인화한 사진을 스캔하여 블로그에 포스팅했었는데 필름스캐너로 다시 스캔하니 화질이 좀 개선 되었다. 당시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설명글은 마지막 부분에 예전(20011126)에 포스팅했던 대로 복사해 왔다.
별을 보는데 관심이 있던 중학교 시절부터 신문이나 라디오에서 유성우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 새벽에 일어나 하늘을 쳐다보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성우를 보려고 했던 때마다 추위와 새벽이 같이 기억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절 유성우 또한 사자자리 유성우였을 것 같다. . 그리고 그 때마다 별 볼 일 없이 지나가는 시시함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밤하늘 사진을 찍어 보겠다고 나선 후에는 1998년 태기산에서 가족과 같이 사자자리 유성우를 보게 되었다. 여기서 촬영한 사진은 이미 홈페이지에 올렸다. 좀 초라하지만 트리밍하여 소개했다. 그 후에도 8월의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와 함께 해마다 날씨가 별로이더라도 월령만 좋으면 태기산으로 관측을 가곤했다. 두 대의 사진기로 촬영한 사진에 나타난 유성이라곤 한 장도 없는 때가 대부분이고 귀퉁이라도 찍히기만 하면 횡재한 기분이 들곤했다. 어쩌다 나타난 유성은 언제나 사진기의 화각을 벗어나고, 방금 사진기 샷터를 닫고 나면 그 곳으로 밝은 유성이 지나가고, 유성이 자주 나타는 곳으로 사진기의 방향을 옮기면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유성이 지나가고, 사진기 화각에 들어온 유성은 어두워서 사진에 나타나지 않고...., 정말이지 유성이 사진에 찍힌다는 것은 대단히 운이 좋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유성우란 기대할 대상이 못되는 시시한 것으로 혹시나는 언제나 역시 나로 마감했었다.
올해도 11월이 가까워 지면서 천문잡지며 인터넷에는 예년과 다름없이 사자자리 유성우에 대한 글이 나타났다. 월령도 좋고 유성우에 대한 정보도 희망적이란다. 일찌감치 휴가신청을 했다. 18일이 가까워 지면서 일간지와 방송에서도 분위기를 띄우는 기사가 경쟁적으로 나타났다. 18일 11시경 처와 함께 강원도 횡성군 불발령으로 출발했다. 장비는 사진기 2대와 삼각대와 이슬방지장치만 챙겼다. 기대가 적어야 실망도 적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가벼운 마음으로 소풍가는 기분으로 다녀오고 싶었다. 물론 추위에 대비해서 방한복은 물론 오리털 이불도 챙기고 손난로도 준비했다. 추위를 무척타는 처는 아무리 좋은 구경거리라도 추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므로 더욱 신경이 쓰였다. 산골은 이미 서릿발이 보이는 겨울이었다. 해질녁에 불발령에 도착하여 시야가 탁트인 곳에 자리를 잡으려니 바람이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바람이 없고 온화하다. 비록 서쪽하늘은 포기했지만 그 외의 방향은 시야도 좋고 주변의 경치도 괜찮았다. 하늘은 온종일 투명하지 못한 상태로 불발령에서 바라보니 먼 경치는 보이지 않았다. 붉은 노을 속에 초승달이 서쪽 하늘로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유성이 보이지 않는다. 자정 이후에 유성우가 쏟아지려면 지금부터 조금씩은 보여야 할 것 같은 생각에 고개가 아프도록 하늘을 응시했으나 허탕이다. 혹시가 이번에도 역시가 될 것 만 같은 우려와 그래도 멀리서 왔는데 그냥 가기도 그렇고 해서 22시까지 일반적인 고정촬영을 했다. 그리고 타이머를 설정해 놓고 차안에서 잤다. 아무도 없는 정말로 호젓한 우리만의 공간이였다.
19일 0시 50분경 타이머 소리에 눈을 떳다. 이 때 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이 밝은 불빛을 내며 지나갔다. 탄성을 지를 여유도 없이..., 처는 소원을 빌 것을 3가지 준비했다고 했다. 원래는 4가지 였는데 너무 욕심을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3가지만 일련번호를 붙였단다. 유성이 나타나면 번호만 말하면 된다고 초저녁에 이태영님이 방송에 유성우 소개할 때 흰트를 주었다. 사진기를 여기저기 움직일 여유도 없다. 한눈에 보이는 것만도 하나,둘,셋,네 개까지..., 고개를 다른 방향에 돌리면 거기에도 유성이 있다. 어디를 보나 유성은 있다. 복사점이 어렵지 않게 보인다. 가끔은 주변이 환할 정도로 밝은 유성도 있고, 책에서 보았던 비행운과 같은 유성흔이 밝은 유성이 지난 곳에 오랬동안 남았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오고 추운와 피곤함도 잊었다. 유성이 점점 줄어들고 동녘이 밝아지며 별들도 푸른 하늘에 묻혔다. 50년 동안 본 유성을 모두 합한다 해도 이번에 본 것보다 결코 많지 않을 듯하다. 단둘이 보기엔 정말 아까운 광경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필림을 동네 사진관에 맞겼다. 슬라이드 필림보다 네가 필림이 아무래도 빨리 나왔다. 현상된 필림에서 유성이 나온 것을 인화했다. 그리고 유성이 가장 많이 찍힌 것 한 장을 좀 확대하여 인화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역시 슬라이드 필림과 같은 콘트라스트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특히 확대한 사진을 보니 사진 중간에 이상한 자욱이 있지 않은가... 언듯 필림의 유효기간이 상당히 지난 필림임이 생각났다. 이런 흠집을 보지 못하고 인화한 것이 아까웠다.그런데 몇 일 후 동호인들이 촬영한 유성우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게 되면서 확대한 사진에 나타난 이상한 자욱이 필림의 하자가 아니라 유성흔임을 알게 되었다.
하여튼 별을 보러 간다기 보다는 내가 혼자서 길을 떠나는 것이 못미더워서 언제나 동행하는 처가 복사점이 사자자리라는 말을 했을 때는, 나의 기준에서 볼 때 동행은 하지만 주로 차안에서 이불 덮고 앉아만 있던 안타까움이 한순간 사라졌다. 대부분은 시큰둥 했는데 운두령에서 헤일밥혜성을 보았을 때와 이번 사자자리 유성우는 감동하는 모습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20011126)
오래 사용해서인지 얼마 전부터 싱크대수전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하룻밤 사이에 한 대접 정도 샌다. 수전 자체를 교체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유튜브를 찾아보니 수리하는데 문제가 없겠다. 육각렌치는 그저께 성북동집 다녀오는 길에 가지고 왔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유튜브 동영상을 한 번 더 보고 시작하였다.
카트리지를 분리하니 패킹과 맞닿는 부분에 요철이 생겼다. 마땅한 연장이 없어서 끌로 대충 긁어내고 나무로 된 망치자루로 문질러서 매끈하게 다듬었다.
나이 들며 움직일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기에 몸을 움직이는 계기가 될까 해서 작년 말(20241227)에 지인이 알려준 스마트폰 앱을 깔았다. 요즈음은 추워서 점심밥을 먹고 밖으로 나와서 45분 이상 걷는다. 어쩔 수 없이 건너뛰는 날이 있기는 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영동에 입원해 있는 친구(박G춘)의 병문안을 간 김에 성북동집에 들렸다. 병문안을 마치고 시간 여유가 있기에 영동에서 성북동집까지는 국도를 이용하였다. 전에 다녀간(20250215) 지 18일 만이다. 황량한 겨울 풍경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봄이 멀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수선화
명자나무 꽃
매화
신발장 옆 냉장고는 잡화 수납장으로 쓰고 있다.
● 온실
별채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온실은 제 기능을 하였는지 의심스럽다. 본채 전실을 온실 대용으로 썼던 때에는 한겨울에 열대식물(란타나+부겐베리아+하와이무궁화(덴마크무궁화))의 잎이 말라죽지는 않았었다. 습기가 너무 많이 차고 곰팡이가 많이 발생하여 창고를 온실로 개조하였는데 너무 부실하였나 보다.
사피니아
화분이 바싹 마르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물을 주었다.
■ 20250306
금수봉
매화(전지작업 전)
매화(전지작업)
작년에 매실나무는 전지작업을 하지 않았다. 머지않아 꽃을 피울 텐데 그냥 둘까 전지작업을 할까 많이 망설였다. 매실보다는 매화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전지작업을 해 주어야 매실이 크고 좋다고는 하지만.... 작년에 웃자란 쭉 뻗은 가지에도 꽃이 피는지 모르니 답답할 따름이다. 전지작업을 해 주어야 꽃이 더욱 풍성해 진다면 지금도 늦었겠지만 꽃눈이 더 커지기 전에 작업을 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보고나서 도장지와 겹친가지와 쳐진가지 위주로 전지작업을 해 주었다. 작년에 쭉 뻗은 가지는 전체를 잘라주는 것이 좋을듯한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전체 모양을 보아가며 20~30cm 여유를 두고 잘라주었다.
매화(전지작업 후)
보리똥나무는 웃자란 가지와 겹친가지의 전지작업을 해 주었으며 복숭이나무는 그대로 두었다.
뽕나무 제거
대문 가까이에 있는 뽕나무는 작년에 아내가 이야기한 것처럼 밑둥을 잘라냈다. 오디도 작고 해충의 피해가 크고 덩치가 커서 그늘이 지니 주변의 복숭아나무나 개나리에 영향을 많이 주기 때문이다.
뽕나무 제거 후
제거한 뽕나무는 추후 장식용이나 더덕 넝쿨을 올리는데 사용하기 위하여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뒤꼍에 보관하였다.
방금 잘라 낸 뽕나무 가지 중에서 하나는 꽃밭에 화분을 걸어두는 용도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뽕나무로 만든 화분걸이
마른 꽃대 제거
국화를 비롯한 마른 꽃대를 제거해 주었다.
피라칸타
작년 초겨울에 물까치 떼의 습격을 받아서 순식간에 피해를 입었을 때 고라니망을 씌웠었다. 키우기 시작한 첫해에는 노지에 그대로 두었다가 얼어 죽고 뿌리만 살아났다. 다음부터는 해마다 겨울철에는 화분에 옮겨 심어서 실내로 들여 놓았더니 나름 싱싱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몇 년 지나니 피라칸타가 많이 자라서 실내로 들여놓을 수 없는 크기가 되었다. 그래서 고라니망을 씌운 위에 비닐을 덮씌웠는데 이 때문인지 잎과 열매가 바싹 말랐다. 날이 많이 풀리고 겨울도 끝지락이기에 이번에 뚜껑 부위의 비닐은 제거해 주었다.
남천
황량한 겨울철 꽃밭에서 혼자서 빨간 단풍과 함께 빨간 열매를 자랑하였는데 올해는 아니다. 잎도 아직까지 단풍이 덜 들거나 말라서 초라하고....
남천 열매가 말라서 생기가 없다.
오히려 땅에 떨어진 남천 열매가 더 빨갛다.
벽지를 제거한 별채방....
지난 가을까지 앞밭에 농사를 지었는데 얼마 전에 주인이 바뀌었다. 올해는 꽃밭이나 가꿀 참이다. 꽃밭을 가꾸는 것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리하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물 흐르는 대로 순리를 따를 참이다.
날이 많이 풀렸다지만 실내에서는 아직 춥다. 온풍기와 전기장판을 가동하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예전에 동계철수를 마치고 성북동집에 복귀한 날을 확인해 보니 20220331, 20230224, 20240313이다. 앞밭의 농사 일이 없으니 늦추어도 괜찮겠지만 수선화를 보아야 할 터이니 아마도 3월 말부터는 날씨에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