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5분정도 걸어서 화성행궁에 도착하였다. 예전에 수원화성을 부분적으로 몇 번 다녀오기는 하였지만 화성행궁은 처음이다. 서울에 있는 5대궁궐에 비하여 늦게 건축되었다는 것은 쉽게 눈에 들어왔다. 자세한 내용을 읽거나 해설을 듣지 못하였는데 다시 방문하게 되면 해설을 들으며 느긋하게 둘러보고 싶다.
수원 화성행궁
봉수당(화성행궁의 정전)
정조 후면에 있는 '주부자시의도' 병풍은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을 재연한 것이다. 오늘 첫 일정으로 다녀온 용주사에도 김홍도의 탱화가 있는데 볼 기회가 없었다.
● 화성행궁 관람을 마치고 수원팔달샌드 선물도 받고 저녁식사를 하였다. 오늘 점심과 저녁을 너무 걸지게 먹은 듯하다. 식사를 마치고 관광버스로 본사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수원역에서 하차하여 전철을 이용하였다. 하루 동안 화성과 수원 부근을 두루 여행하였다. 여러 곳을 다니려니 시간이 부족하여 자세하고 여유롭게 둘러보지는 못하였다. 사진촬영을 하려고 마음먹고 나섰으니 내용을 읽어 본다든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지만 동료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다음 기회에 느긋하게 다시 가보고 싶다.
자세히 읽어볼 여유는 없었지만 후손들이 유물을 기증을 해서인지 번암 채제공의 초상화가 여럿 보인다. 채제공(남인의 영수)은 영조 때 사도세자의 스승이자 후견인이었다. 사도세자와 영조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자 영조가 세자폐위의 비망기(임금의 명령이나 의견을 적어서 승지에게 전달하는 문서)를 내리자 목숨 걸고 막아서 철회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세손인 정조의 교육과 보육을 담당하기도 하였고 세손을 보호하는데도 관여하여 정조와의 유대가 깊어졌다고 한다. 당파싸움으로 여러 차례 파직과 유배와 복직이 반복되었으며 한 때 화성부 유수로 다산 정약용과 수원화성을 축조하기도 하였다. 이만하면 수원화성박물관에 채제공의 유물이 전시될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석북 신광수는 관서악부(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는 친구인 번암 채제공을 축하하기 위하여 지은 악부시 108수)와 관산융마(과거시험 때 쓴 시 '등악양루탄관산융마')로 알려졌으며, 시조(時調)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2년 전에 석북 신광수(나의 고등학교 친구인 신W순의 선조)의 자료공개 행사를 촬영하게 되면서 석북 신광수와 번암 채제공이 절친한 친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전에 용주사와 융릉 관람을 마치고 인근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마침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부근 식당들은 차가 빡빡하게 주차되어 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오후 첫 일정으로 국립농업박물관을 관람하였다. 하루 동안 여러 곳을 방문하려니 일정이 짧기도 하지만 사진 찍는데 신경이 쓰여 전시물을 세세히 보거나 설명문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중에 여유롭게 다시 와보아야 하겠다.
SQ그룹 전문위원이 참여하는 2025년 수원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한낮에는 기온이 올라가서 따뜻한 정도를 넘어서 덮겠기에 점퍼를 넣고 다닐 배낭을 챙겼다. 집을 나설 때에는 배낭에 여행 사진을 촬영할 카메라만 덩그러니 들어 있다.평소라면 잠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에 출발하여 전철을 타고 회사로 향하였다. 오금역에서 하차였는데 건축팀 남S혁님을 만났다. 어쩐 일이시냐고 반갑게 인사한다. 전문위원들 소풍 가는 날이잖어?
■ 화성 용주사
관광버스 편으로 본사를 출발하여 수원역에 들러서 대전팀과 합류하여 용주사에 도착하였다. 서울에서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16년만이다. 오랜만이기는 하지만 네 번째 방문이기에 건물은 알만하다. 사천왕문을 들어서서부터는 보도에 돌은 깐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부자연스럽고 낯설게 느껴진다.
42년 전 초파일(19830520)에 용수사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승용차가 없던 시절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했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녀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효행박물관을 신축하기 이전으로 효행박물관 부근의 담장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담장은 현재의 모습과 대조해 보니 비슷해 보인다. 돗자리 깔고, 석유버너로 코펠에 밥을 해서 돌로 뚜껑을 눌러 놓고, 찌개를 끓이는 중이 아닐까? 김치를 넣어 온 유리병도 보인다. 배낭의 내용물이 비에 젖지 않도록 복합비료 포대에 등산용품을 담아서 배낭에 넣고 다녔다. 당시에는 평범한 가족여행 모습이었지만 요즈음 이런 행동을 하면 뉴스에 나오지 않을까? 내게는 딸 하나 둔 아빠로서 행복하고 혈기 왕성한 시절이었다.
홍살문
절에는 없지만 정조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를 창건하고 호성전(대웅보전 우측)에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에 홍살문이 있다고 한다.
삼문
오층석탑
천보루
대웅보전(보물)
동종(국보)
■ 화성 융릉
여행 일정이 빡빡하지만 바삐 움직이면 융릉과 건릉을 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우선 사도세자(장조)와 혜경궁 홍씨를 모신 융릉부터 보기로 하였다. 해설하시는 분이 설명을 해 주신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설명을 들으니 그냥 지나쳤을 만한 것까지 관심이 갔다.
예전에도 다녀가기는 하였지만 해설을 들으니 새롭게 보인다.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게 된 사연, 뒤주에서 죽은 죄인의 아들인 정조가 임금이 된 경위, 죄인으로 죽은 아버지(사도세자)를 왕릉에 모시기 위한 정조의 노력, 왕릉을 조성하며 이 지역 주민을 수원화성으로 이주시키고 수원화성을 건설한 이야기 등으로 이어지니 흥미진진하였다.
해설하시는 분이 아니었다면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
금천교 직전까지 해설은 계속 되었다.
홍살문 부근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해설은 중단되었다. 오늘 여러 곳을 돌아보았지만 그 중에서 융릉 해설을 들은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다음 일정이 늦어지기에 해설은 여기서 중단되었다. 건릉에는 가지도 못하였으며 융릉도 홍살문까지만 간 셈이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