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여행(보림사-1)/20160410
장흥 읍내에 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시간이 부족하다. 장흥ic 부근에 있는 부춘정원림에 들리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보림사로 갔다. 워낙 큰 사찰에 현재 남아있는 사천왕상 중에서 가장 오래 된 조선시대(임진왜란 이전인 중종 10년=1515년)의 보기 드문 사천왕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흥 보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원표(元表)가 세운 암자에다 860년경 신라 헌안왕(憲安王)의 권유로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창건하여 선종(禪宗)의 도입과 동시에 맨 먼저 선종이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가지산파(迦智山派)의 근본도량이었으며,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이라 일컬어졌다.
경내에는 국보 제44호인 3층석탑 및 석등, 국보 제117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155호인 동부도(東浮屠), 보물 제156호인
서부도, 보물 제157 ·158호인 보조선사 창성탑(彰聖塔) 및 창성탑비 등이 있다.
이 절은 가지산파의 법맥을 이어받은 체징(體澄)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체징은 이 산에 들어와 터를 잡고, 860년에 대찰을 창건하여 가지산파의 중심사찰로 발전시켰다.
그 뒤 끊임없는 중창과 중수를 거쳐 6·25전쟁 때 소실되기 전까지는 20여 동의 전각을 갖춘 대찰이었다. 그러나 공비들이 소굴로 이용하였던 이 절에다 도주하기 전에 불을 놓아 대웅전 등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타고, 단지 천왕문(天王門)과 사천왕(四天王)·외호문(外護門)만 남았다.
불타버린 대웅전은 서쪽을 향하여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 중층팔작(重層八作)지붕의 큰 건물이었다.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2층까지 통해서 한 방으로 만들고, 중앙 단상에는 금동석가여래상과 양협시불을 안치하였는데, 구조양식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수한 수법이다. 이후 주민들은 대적광전을 다시 지어 대웅전에 있었던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과 천왕문·영각(影閣)·요사채 등이 있다. 사천왕문 안에 봉안된 사천왕상은 1780년(정조 4)에 조성된 국내 목각상의 대표적인 것으로, 최근 중수하여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였으나, 복장 속의 비장품은 도굴꾼들에 의하여 망가진 상태로 방치되었다. 현재 사천왕문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44호인 보림사삼층석탑 및 석등, 국보 제117호인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155호인 보림사동부도(寶林寺東浮屠), 보물 제156호인 보림사서부도(寶林寺西浮屠), 보물 제157호인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 보물 제158호인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남쪽 석탑이 높이 5.4m, 북쪽 석탑이 5.9m이며, 석등은 높이 3m로서 이들은 모두 870년(경문왕 10)에 건립되었다. 비로자나불좌상은 858년(헌안왕 2)에 김언경(金彦卿)이 자신의 봉급을 모아 조성한 불상이다.
[출처] 장흥 보림사 홈페이지/http://www.borimsa.org/temple/about/about_02.html
동방지국천왕 (왼쪽)
남방증장천왕 (오른쪽)
동방지국천왕
남방증장천왕
서방광목천왕(왼쪽) 북방다문천왕 (오른쪽)
서방광목천왕
북방다문천왕
사천왕상은 절에 들어서는 입구(일주문) 가까운 곳에 있다. 험상궂은 모습에 비슷한 불상 4개가 구별도 되지 않아서 쉽게 다가서지 못하였다. 그런데 최명희의 소설 '혼불'을 읽으며 호기심이 생겼다. 사천왕이 있는 절에 가면 사진을 촬영하고 '혼불'의 내용과 비교해서 블로그에 포스팅하였다. 여수 흥국사, 진도 쌍계사, 공주 마곡사, 부안 내소사, 고창 선운사까지 다섯 군데를 다녀 올 때까지는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이 거의 같았다. 이중 진도 쌍계사,부안 내소사는 명패가 있어서 확실히 구분이 되었으며 여수 흥국사, 공주 마곡사, 고창 선운사는 명패는 없지만 사천왕상의 위치와 형상이 명패가 있는 절과 같아서 명패만 없을 뿐이지 같다고 보았다. 그런데 2014년 구례 화엄사에서 본 사천왕상은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은 지금까지 다른 절에서 보아온 것과 같은데 명패는 다르게 되어 있어서 혼란스러웠다. 화엄사와 연관된 곳에 질문을 했으나 대답이 없고, 2015년 다시 화엄사에 가서는 명패가 움직이지 않는 구조이며 일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불교에 대해서 깊이 알지도 못하니 궁금하기는 해도 뭔가 다른 해석이 있나보다 생각하였다.
보림사 사천왕상은 보물 제1254호로 임진왜란 이전인 중종 10년(1515년)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사천왕상 중에서 가장 오래 된 조선시대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봉안된 사천왕상이 구례 화엄사의 사천왕상과 모습 및 명패가 거의 일치하였다. 보림사와 화엄사를 비교해 보니 동방과 남방은 같고, 북방은 깃발(보림사)이 깃발 달린 삼지창(화엄사)으로 비슷하고, 서방은 칼과 창(보림사)이지만 용과 여의주(화엄사)로 다르다. 그런데 보림사 사천문에 있는 표지판의 내용 중에서 동방과 남방 설명은 사천왕상 명판 및 형상과 비교해 보니 표지판에 설명이 바뀐 듯하다. 이 또한 다른 해석일 수 있겠다는 조심스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사천왕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아래 [참고자료]의 출처에 있는 '한민족문화대백과'의 내용은 '혼불' 및 내가 포스팅한 무위사 등 여섯 군데의 절과 같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문화원형백과'의 내용에 보면 경전에 따라서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이 다르기도 하다. 이를 게기로 보림사를 포함하여 그간 포스팅한 여덟 곳의 사천왕상 위치를 분석해 보니 명패와 상관없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거의 같았다. 즉 사천왕상이 있는 사천문의 지리적인 방위와는 상관이 없고, 입구에서 절에 들어가는 오른쪽은 법당 쪽(왼쪽)이 비파, 입구(일주문) 쪽(오른쪽)이 칼을 들고 있으며 왼쪽은 입구(일주문) 쪽(왼쪽)이 용과 여의주, 법당 쪽(오른쪽)이 깃발 달린 창과 탑을 들고 있다. 즉.....
[참고자료]
1. 사천왕(한민족문화대백과)
우리 나라의 사찰에서는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의 천왕문(天王門)에 이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다.
보통 이 천왕상들은 불거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치켜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손에는 큼직한 칼 등을 들고, 발로는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때 발 밑에 깔린 마귀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하는 상을 하고 있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들은 수미산(須彌山) 중턱에서 각각 그들의 권속들과 살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 수호와 사부대중의 보호를 맡게 되었다.
또, 사천왕과 그 부하 권속들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세간의 선악을 늘 살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매월 8일에는 사천왕의 사자(使者)들이, 14일 태자(太子)가, 15일 사천왕 자신이 제석천(帝釋天)에게 보고하는 것이 중대한 임무의 하나가 되고 있다.
사천왕 중 동쪽을 수호하는 이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다. 그는 안민(安民)의 신으로서 수미산 동쪽 중턱의 황금타(黃金埵)에 있는 천궁(天宮)에서 살고 있다. 16선신(善神)의 하나이기도 한 지국천왕은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어 항상 인간을 고루 보살피며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얼굴은 푸른빛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었고 오른손은 허리를 잡고 있거나 또는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그는 휘하에 팔부신중의 하나로서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맡는 음악의 신 건달바(乾達婆)를 거느리고 있다.
서쪽을 방어하는 신은 수미산 중턱 백은타(白銀埵)에 살고 있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이다. 그는 흔히 잡어(雜語)·비호보(非好報)·악안(惡眼)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그의 남다른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그의 몸은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을 함으로써 웅변으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고 한다. 또 눈을 크게 부릅뜸으로써 그 위엄으로 나쁜 것들을 몰아낸다고 하여 악안·광목이라고 하는 것이다.
광목천왕의 근본 서원은 죄인에게 벌을 내려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도심(道心)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워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차극(三叉戟)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보탑을 받들어 쥐고 있다. 그의 권속으로는 용(龍)과 비사사(毘舍闍) 등이 있다.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수미산 남쪽의 유리타(瑠璃埵)에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위덕을 증가하여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구반다 등 무수한 귀신을 거느린 증장천왕은 온몸이 적육색이며 노한 눈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그의 모습은 대개 갑옷으로 무장하고 오른손은 용을 잡아 가슴 바로 아래에 대고 있고, 왼손에는 용의 여의주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달리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라고도 하는데,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하여 다문이라고 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인데 한때 불법에 귀의하여 광명신(光明神)이 되었으나, 본래 자신의 원을 지킨다 하여 금비라신(金毘羅神)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다문천왕은 왼손에 늘 비파를 들고 있다. 그는 수미산의 북쪽 수정타(水精埵)에 살며, 그의 권속으로 야차와 나찰을 거느리고 있다.
현재 이 사천왕은 천왕문에 많이 봉안되지만, 달리 불보살의 후불탱화에도 외호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한민족문화대백과
[원문]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8883&cid=46648&categoryId=46648
2. 사천왕(문화원형백과)
□동방지국천왕 [東方持國天王]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편하게 하는 천왕이다.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는 사천왕들 중에서 동쪽 영역의 황금타(黃金唾)를 관장하는 천왕(天王)이다. 지국천왕은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벌을 내리며, 늘 인간들을 보살피고 인간들의 땅을 지켜준다. 부처님 또는 수미산을 다스리는 제석천이 지국천왕에게 동방에서 불법을 지키라고 명령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명을 받아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하게 하기 때문에 지국(持國)천왕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신화에서는 지국천왕이 권속으로 간다르바를 부린다고 되어 있다. 후대의 불경에서는 지국천왕이 동방에서 간다르바나 비사사라는 귀신을 부리는데, 참된 도리를 파괴하고 선한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을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동방지국천왕이 가지고 있는 물건(持物)에 대하여는 경전마다 조금씩 달리 표현되어 있다.다라니집경에 의하면 동방지국천왕은 왼손에 팔을 내려 칼을 잡고 오른손을 구부려 보주(寶珠)를 쥔다고 하고, 일자불정륜경(一字佛頂輪經)에 의하면 왼손에는 창을, 오른손은 손바닥을 올려드는 형상이라고 한다.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에는 비파(琵琶)를 든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문화원형백과
□남방증장천왕 [南方增長天王]
중생의 이익을 증대시켜주는 천왕으로 수미산 세계의 남쪽을 관당한다.
수미산 중턱의 남쪽 영역 류리타(琉璃唾)를 관장하는 천왕(天王)이다. 중장천왕은 자신의 위엄과 덕으로써 만물을 소생시키고 덕을 베푼다. 고대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로는 “Virudhaka”라고 하는데, 그 뜻은 자꾸 늘어난다·확대된다는 의미이다. 한문으로 증장(增長)이라고 한다. 중생의 이익을 증대시켜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증장천왕은 그 부하로 굼반다와 프레타를 부린다. 굼반다는 배가 매우 부른 모습으로 표현되는 욕심이 매우 많은 아귀이며, 지국천왕의 부하인 비사사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귀신이라고 한다. 프레타는 탐욕스러운 자가 사후에 떨어지는 생존 상태인 아귀도(餓鬼途)를 뜻하는데, 죽은 자의 영혼을 부린다고 한다.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웠고 삼지창(三枝槍)을 들고 있고 갑옷을 입었다. 증장천왕의 지물(持物)은 대체로 칼을 쥐는 것으로 표현된다. 다리니집경은 왼손을 펴서 칼을 잡고 오른손에는 창을 잡는다고 하며, 일자불정륜경에는 오른손을 허리에 대고 왼손에 창을 잡는다고 하고,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에는 칼을 잡는다고 씌여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문화원형백과
□서방광목천왕 [西方廣目天王]
인간세계의 선과 악을 살펴 죄 지은 자를 벌로써 다스리고 반성하게 하는 천왕이다.
크고 넓은 눈을 가진 천왕으로 수미산 서쪽 중턱에 자리한 백은타(白銀唾)라는 곳에 머물며 불법을 지킨다. 고대인도어로는 “Virupaksha”라고 하는데, 이상한 눈·추한 눈이라는 뜻이다. 한문으로는 추목(醜目)·악안(惡眼)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이라고 불리어진다. 광목천왕은 죄인에게 심한 벌을 내려 고통을 느께게 하여 반성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광목천왕은 3개의 눈을 가졌다는 고대 인도 시바신의 화신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광목(廣目)이라 불리우는 것 같다. 그 부하로는 여러 종류의 용(龍)과 부단나(富單那) 등이 있다. 부단나는 냄새나는 귀신·아귀를 말하는데, 때로는 열병을 앓게 한다고 한다. 용은 하늘에서 구름·비·천둥 등을 부린다.
매서운 눈을 부릅 뜨고 있는 광목천왕은 오른손에는 용을 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꺼낸 여의주를 쥐고 있다.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한 모습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문화원형백과
□북방다문천왕 [北方多聞天王]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으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암흑계를 관리한다.
수미산 중턱의 북쪽 구로주(瞿盧州)를 수호하는 천왕으로 비사문천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며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다문천(多聞天)이라 불린다.
고대 인도의 신화에서는 다문천왕이 암흑계에 머무는 악령의 우두머리로서 재물과 복덕을 주관하는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다문천왕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듣는 호법신이 된 것이다.
다문천왕은 권속으로 야차·나찰을 부린다.야차는 행동이 민첩하고 가벼우며 음악과 환락·음식·오락·바람을 주관하며, 숲 속이나 묘지·골짜기에서 산다고 한다. 나찰은 두려운 존재라는 뜻으로 혈육(血肉)을 먹고 탐내는 존재이다.
다문천왕은 지물(持物)로 보탑을 들고 있어 특징적이다. 불교미술의 수많은 신장상 중에서 사천왕을 구별해 낼 수 있는 중요한 표식이기도 하다. 다라니집경에는 다문천왕이왼손에 창을 잡고 오른손에는 불탑(佛塔)을 든다고 하며,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에는 왼손에 막대를, 오른손에 탑을 든다고 하였다. 어둠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얼굴이 검은 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문화원형백과
[원문]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28376&cid=49296&categoryId=49296&expCategoryId=49296
3. 최명희의 [혼불]에서 사천왕에 대한 부분.....
□사천왕-(P60)-부처님의 법을 수호하는 천신-절 경내의 첫 번째 문인 천왕문에 봉안-동+남+서+북천왕-1300년전인 삼국시대부터 사천왕을 봉안하기 시작, 무서워서 귀엽다, 호국+호법 차원에서 중창, 인도고대종교 귀신들의 왕-부처님께 귀의하여 수호신이 됨-질병+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섬기는 신앙, 일본불교에는 사천왕을 섬기는 종파 있음, 사천왕은 부하 권속들과 인간세간 선악 살핌-8일=사자들이+14일은 태자+15일은 사천왕이 상전인 선견성에 사는 제석천(=도리천=세계의 중심-수미산 꼭대기 하늘)임금에게 보고, 사천왕 얼굴이 험상굿고 무서운 것=용맹+위엄 극대화-인간 죄의식을 불러 이르켜 각성 시키려함, 손톱이 짧고 곱다, 명나라 갑옷이 원형, 사천왕 중건 불사의 뜻=나라 되찾고 올바른 서상에서 살기 염원, 완주 송광사 차천왕상=조선에서 가장 빼어남+사천왕상의 전형-흙으로 빗은 가장 오래 된 것, 경기도 칠장사 사천왕-가장 슬픈 얼굴, 머리에 보살이 쓰는 보관을 씀, 직지사+법련사+보림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지 않고 사천왕이 남아 있는 곳
□사천왕이 있는 절-(P101)완주 송광사+선운사+화엄사+여천 흥국사+고흥 능가사+영광 불갑사+직지사+청도 적천사+남해 용문사+쌍계사+통도사+법주사+....
□일본 사천왕상-무채색의 화강암 등 사용-사람크기로 만듬+잔혹한 인간 얼굴
□인다라망-그물-세간에 얽히고 설킨 인과 상징-사천왕 있는 성을 둘러싼 것중 하나
□사천왕 발에 짖밟힌 것(P180)=악귀들-왜 밟고 있는지는 경전 등의 기록에 없음-후대에 인간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변형된 것-악귀+탐관오리+못된 부자+무지렁이(=어리석은 자-자신을 닦아서 존귀하지 못하고 방치한죄)+가릉빈가(=반인반조-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가라빈가=빈가=극락조-타락한 천사?의 극대비 양면성)+음녀
□사천왕문에 여인이 있는 곳-고창 선운사+고흥 능가사
□사천왕 발 밑에 악귀와 사람이 등장-조선 숙종 때부터
□사천왕상-명나라 장수복장을 한 서역인
[다른 사찰의 사천왕상]
20160409 강진 무위사..... http://hhk2001.tistory.com/5000
20150329 구례 화엄사..... http://hhk2001.tistory.com/4725
20130927 고창 선운사..... http://hhk2001.tistory.com/4121
20130926 부안 내소사..... http://hhk2001.tistory.com/4116
20121103 공주 마곡사..... http://hhk2001.tistory.com/3809
20120415 진도 쌍계사..... http://hhk2001.tistory.com/137
20110326 여수 흥국사..... http://hhk2001.tistory.com/904
[후기] 사천왕상 때문에 보림사에 들린것이 아니어서 사천왕상에 대한 안내문을 읽고서야 중요성과 제대로 찾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포스팅하는 과정에서 다른 절에서 본 사천왕상과 비교하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금까지는 구례 화엄사의 사천왕상이 다른 절과 달라서 무엇인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화엄사(1630년) 사천왕상보다 먼저 만들어진 보림사 사천왕상(1515년)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그간 사천왕상에 대한 포스팅에 오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포스팅한 부분이 있으면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포스팅한 사진이 포함된 원본파일을 분석하여 봉안된 위치와 이름과 형상을 정리하여 분석하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는데 3일이 걸렸다. 명패가 없는 사찰의 사천왕상에 대해서 형상만 보고 이름을 붙인 오류가 있기는 했지만 분석해 본 결과 이름을 잘못 붙인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차라리 이름을 붙이지 말것을 하는 마음이다. 앞으로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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