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무지에 대한 추억/20190812

 

닥꾸앙~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단무지에 대한 추억을 기록해 보리라 생각한지도 몇 년이 지났다.

한 때는 관 단무지를 사다 먹기도 하였지만 요즈음은 식당에 가서나 먹어보는 단무지.....

지금도 단무지를 좋아한다.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단무지 이야기를 쓰려고 김밥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단무지 사진을 찍었다.
동행한 직원들이 하찮은 반찬인 단무지 사진을 정성들여 찍는다고 의아해한다.

 

 

 

중학교 2학년 때 나이는 같지만 한 학년 상급생인 고향 친구(고 전ㅇ근)와 일 년 정도 자취를 했었다.

옛 기억을 더듬어서 찾아보니 지금의 충남여자고등학교(옛 대전사범학교)와 용두아파트 사이쯤의 언덕배기 정상쯤이었다.

루핑 지붕의 연립주택으로 방에는 하늘이 보이는 천창(고정창)과 부엌에는 환기구가 있었다.

밖에서 부엌으로 들어가면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방에서 부엌의 반대편으로 작은 창고에는 뒷문이 있어 밖으로 통하였다.

옆집과의 경계 벽은 소각재 위에 한 면만 얇은 합판을 붙이고 벽지를 발라서 밤에 불을 끄면 옆집 불빛이 못 구멍으로 보였다.

부엌은 옆집과 상부칸막이 벽이 없었는데 어느 날 된장찌개를 끓이다가 방에 들어와서 깜빡 잊고 있었다.

된장찌개가 타며 고약한 냄새가 옆집으로 퍼져서 아주머니들의 핀잔을 듣기도 하였었다.

세대별 화장실은 없고 밖에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느라 일찍 일어나야하기도 하였었다.

아사 온 첫날 길쭉한 새우젓 항아리와 대야 몇 개가 창고에 있는 것이 의아했었다.

비가 내리니 지붕이 새서 물이 떨어지는 위치에 새우젓 항아리와 대야를 놓고 물이 튀니 대야에는 걸레를 담아 놓는다.

뒷문 옆 굴뚝에 안테나를 설치고, 동판으로 접지를 하여 광석라디오를 만들어서 크리스털이어폰으로 방송을 들었다.

근처에 KBS대전방송국의 목동송신탑이 있었는데 우연히 안테나와 접지선 사이에 전구를 연결해 보았다.

불그스름하게 불이 켜져 지기도 하였는데, 내가 지금까지도 납땜하고 뭔가를 만지작거리는 취미는 이 당시 시작된 것이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몸이 꼼짝도 못하고 있을 때 친구가 발로 문을 차서 한참 만에 깨어났던 기억도 나고(지각은 했지만...),

대보름날 고향집에 가지 못하고 천창을 통해서 보이는 달을 보고 눈물을 짰던 생각도 난다.  

그리고 어느날 아침에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을 싸는데.....

도시락에 밥은 담았지만 반찬거리가 아무것도 없었는데 친구가 자기 돈으로 단무지 한 토막을 사왔다.

사 온 단무지를 썰어서 자기 도시락에만 넣었기에 나는 반찬 없이 밥만 싸가지고 갔다.

북한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가 중2가 있기 때문이라는 농담이 있기도 하지만,

자기 돈으로 사왔다고 자기만 가져간 친구나, 단무지 좀 달라고 말 한마디 못한 나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애였다.

같이 자취를 했던 그 친구가 오래전에 고인이 되었기에 서운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면 밝히지도 않았으리라.

지금도 단무지를 먹을 때면 그 시절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저학년 때에는 도시락을 싸가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동네 학생들은 도시락을 사가지고 다녔다.

학교까지 걸어서 4~50분 거리다보니 하교 길에 큰구렁이나 작은구렁에서 먹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고무마개가 있는 페니실린 병에 재래간장과 참기름을 넣은 것이 나의 도시락 반찬이었다.

간장과 참기름이 잘 섞이도록 페니실린 병을 심하게 흔들어 알루미늄 도시락에 담긴 밥에 부어서 비벼 먹었었다.

학교가 가까운 동네에 사는 친구들은 이것도 부러웠는지 60여년이 지난 최근에 그 이야기를 해서 나를 놀라게 하였었다. 

이 당시 도시락 반찬으로는 시꺼먼 무장아찌도 있었고 때로는 집에서 담근 단무지도 있었다.

맛이 없기로는 무장아찌와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등장하였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부엌의 땔감을 넣어두는 뒤쪽에 길쭉한 재우젓 항아리가 있었다.

가을에 길쭉한 무를 삐들삐들하게 말려서 노란 색소를 섞은 왕겨(딩게)에 버무려 저장해 둔 것이었다.

물론 소금과 조미료(당원)도 넣었겠지만 내가 어려서 본 것이라 더 이상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단무지를 꺼내는 것은 어머니보다 팔이 긴 아버지가 담당하셨다.

팔을 걷어붙이고 한 손에 왕겨 묻은 단무지를 꺼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렇게 꺼낸 약간 노란색의 단무지는 고춧가루와 참기름과 마늘과 파를 넣어서 무쳤는데도 씁쓰름하였다.

  

 

큰구렁/20190220

당시에는 석축은 없었고 아카시나무 부근이 오망하고 온화해서 도시락을 먹기에 좋은 장소였다.

 

 

 

작은구렁/20180728

지금은 호남고속도로가 생겨 짐작조차 할 수 없이 변하였지만 검정비닐하우스 오른쪽까지 산줄기였다.

나무가 없는 민둥산 사이의 좁은 골자기 길이었기에 비탈면에 숟가락으로 구멍을 파서 고구마를 숨겨 두기도 하였었다. 

 

 

 

 

 

45년 전(1974) 군에 입대하여 전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초겨울에 자대 배치를 받아서 가는 길에 부산에 도착하였다.

대기병 시절이라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사역병을 모집하기에 지원하였다. 

취사장에 배치를 받았는데 단무지를 써는 일이였다.

한나절 단무지만 썰었다.

그 당시야 단무지를 좋아하지는 않았던 때였지만, 단무지를 썬 하찮은 일이지만 내게는 추억거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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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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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9나 2019.08.17 0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우리 어렸을 때 얘기요 - 그냥 '다꽝, 다꾸앙' 이라고 부를 때 아니었소? '단무지' 라는 말은 우리가 좀 큰 다음에 일본말 쓰지 말라고 하면서 나오지 않았나 어렴풋이 기억 되오. 대전역 부근에 많은 '쓰리꾼'들을 '소매치기' 라고 우리말로 불러 줘야 했고, 하하하.
    덕분에 옛날 알루미늄 도시락통 모습도 생각해 보았는데, 그랬더니 갑자기 배도 고파지고 난로위 도시락 타던 냄새도 나는 듯 하고 그러오. 재미난 글 잘 읽었소.

    • 하헌국 2019.08.19 1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언젠가 단무지에 대해서 쓰려고 마음은 먹었는데 막상 쓰고나니 아쉽소.
      표현력 부족 및 사족이 길어서요.
      그러나 사족도 생각난 김에 중2때 자취것이지만 기록해 보았다오.
      더위도 고개를 넘긴 듯하오.
      기록상 더 더웠던 작년보다 힘들었다는 친구들도 있더구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어제 유명산에 다녀왔지요.
      그 내용은 카톡으로 링크를 걸지요.
      건강하시구려.

  2. 영도나그네 2019.08.22 14: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햐!
    정말 어릴적 생각이 나는 내용들이군요..
    아마도 60-70년대의 사람들에게는 누구라도
    생각나게 하는내용들이기도 하구요..
    지금세대 사람들에게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라 할것 같기도 하구요..
    잘보고 갑니다...

    • 하헌국 2019.08.27 2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양념해서 무쳐도 씁스름해서 별 맛은 없었지요.
      요즈음 단무지는 맛있어서 반찬으로 단무지가 나오면 열심히 먹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