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부탁으로 보성에서 거제도까지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남해안 여행자료를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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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스타일을 바꾸어 볼까?/20100910
여행길을 나설 때에는 차가 막혀서 고생할까 봐서 빨리빨리를 주문하고,여행지에 도착하면 집으로 돌아 갈때차가 막혀서 고생할까 봐서 또빨리빨리를 주문한다. 여행시 길이 막혀서 차안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도 아깝고,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서 아깝고, 공회전으로 불필요한 연료를소모하니 아깝다. 또한 혼자서 운전을 하다 보니 무척 피곤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 생각과는 달리 아내는 갈 때도 빨리빨리, 올 때도 빨리빨리하려면 뭐하러 여행을 가냐고도 한다.
옳은 말씀이고 좋자고 여행하며의견이 달라지니 어떤 때는 기분도 찝찝하다. 앞으로는 여행 스타일을 바꾸어서 좀더 여유롭게놀며 쉬며 다니면 어떨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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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부터 건설회사에 근무했는데 그 시절의 건설현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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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자/20100601
학창시절 주로 쓰던 T자다. 제도판에서 설계도면 작성시 수평선을 그리는데 주로 사용한다. 수직선은 T자 위에 삼각자를 좌우로 이동하여 그린다. 주로집에서 사용하였으며, 학교에서는 만능제도기를 사용하였다. 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이 T자를 이용한 기억은 없다. 그래도 이사 다닐 때마다 버리지 않고챙기는 추억의 물건이다.
젊은시절 건설회사에 다닐 때에도T자와 삼각자를 이용하여 설계도면을 작성하였다. 공사현장에 근무하던 신입사원 시절에는 제도판도 기성품이 아니라 합판으로 만들었다. 그 후, 1997년도에 AotoCAD릴리즈13을 배운 다음부터는 간단한 도면은 CAD를 활용하고 있다. 요즈음이야 설계하면 AutoCAD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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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 보경사 사진첩/20100326
그 시절에는 대부분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지만 미리 예약을하지 못해서 보경사에 다녀왔다. 그 때 기념으로 사온 사진첩이다.
옛날 여행자료/2009122440여년 전에 여행 및 등산을 위해서 작성한 자료다. 요즈음 처럼 쉽게 자료를 모을 수 없는 여건에서 하나하나 모은 것과 현지에 다녀와서 정리한 자료들이다. 다녀온 날짜와 그 당시의 교통비와 물가도 언듯언듯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다리가 시원치 않아서 등산은 엄두도 못내고 주로 여행을 다니지만 옛날 생각이 되살아 나는 기록들이다.
가 보아야 할 곳의 목록표를 먼저 만들고 자료가 수집되는 대로 정리하였다.모든 목록의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해 여름에 고향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금수봉에 올라갔을 때 계룡산을 처음 보았었다. 그리고 1969년 11월에 처음으로 계룡산에 다녀 왔다. 예비고사를 마치고 동네 친구들과 조그만 솥단지를 새끼로 묶어서 들고 떠났다. 신도안까지 걸어가서 이장네집 사랑방에서 하룻밤 자고 암용추를 지나 상봉을 거쳐서 동학사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동월에서 디딜방아를 잘못 밟아서 고춧자루가 친구 눈에 들어가 펄펄 뛰던 생각도 난다. 동월을 거쳐서 금수봉과 백운봉 사이의 산길을 넘어 왔다.
박ㅇ춘과 둘이 갔는데 어떤 등산객이 월남에서 가져 왔다는 아주 작은 카메라 삼각대가 생각난다.
단오날 김ㅇ설과.....
여름방학 때 혼자서 충북선을 탔다.제천역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다 중앙선으로 갈아 타고 중령을 넘었다. 지금도 맛있는 옥수수 먹은 이야기 할 때마다 등장하는 그날 중령부근에서 사먹은 것과80년대 말에 단양 고수동굴 앞에서 사먹은 것을 제일로 친다. 희방사역에서 내려 희방사를 거쳐 연화봉으로 올랐다.궂은 날씨에 다른 등산객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희방사에서 숙박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연화봉-비로봉-국망봉-초암사를 다녀오려 했고 그런줄 알았는데 아마도 연화봉 쯤에서 하산길로 들어선 모양이다. 초암사를 거치지도 않았는데 벌써 동네에 다다른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나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이 기록에 나타난 태백산과 문곡리 등은 계획에는 있었는데 그냥 돌아온 것 같기도하고.....
오ㅇ인, 정ㅇ면, 박ㅇ현, 이ㅇ수, 방ㅇ혁과 여섯명이 1970년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떠났다. 밤열차로 출발해서 아침에 구례구에 도착하여 걸어서 구례까지 갔다. 입산허가차 경찰서에 가니 장마철이라 곤란하다는데도 사정해서 허가를받았다. 시장에서노란 헝겁을 사서 배낭에달고 걸어서 화엄사를 거쳐서 노고단으로 향했다. 장마철이라 길이 군데군데 물이 차서 중간에 길을 앓게 되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10Km를 다음날에서야 도착했다. 노고단에서천왕봉까지 47Km의 종주 길에 벽소령에서는2박을 했다. 군막사로 쓰는 천막으로 대피하여 군인들과같이 하룻밤을 견뎌내고 튀김두부도 몰래 먹었다. 무선으로 본부에 헬기를요청해도 푹풍우 때문에 올 수가 없다는 연락이 왔다. 천막이 바람에 날려 복구하러 나갔을 때 살을 파고드는 아품과 차가웠던 기억은 지금도 겨울 추위 이상으로생생하다, 소주 한병을 아끼고 아껴서비상시에 마시겠다고 가지고 다니다가 장터목에서 마셨다. 백무동에서 냇물 건너다 하프카메라가 물에 빠져서 사진 대부분을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남원으로 나와 시외버스로 구례를 거쳐 화엄사와 쌍계사를 다녀 왔다. 불일폭포의 장엄함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렇게 4박 5일 정도로 계획했던 일정은 7박8일로 마쳤다. 지금까지 지리산과 그 언저리에 여러번 다녀 왔지만 아직도 지리산 하면 40년 전의 처음 종주등반이 먼져 떠오른다.
혼자 가서 한밤중에 도착했다. 지평선 위로 희미하게 보이는 마이산을 향해 신작로를 걸었다. 가는 길에 자전거가 뒤따라 와서 길을 물었 보았다. 이를 계기로 그분(양ㅇ호님) 집에서 잤다. 마이산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들러서 막걸리도 얻너 먹고....
박ㅇ춘과 같이 가서 삼도봉 표지석 아래에 복숭아 통조림 깡통에 이름 써넣고 거꾸로 묻어 두었다. 이 친구는 지금 이 부근에 살고 있지만......
한문 공책/20091223
아내가 신혼살림을 정리할 때 뭔가를 찾는 눈치였다. 그 때는 아내가 가져온 물건을 감히 들쑤시며 찾지 못하던 때라 걷돌기만 했다. 한참만에 찾던 물건이 이것이라고 하는데 한문 공책이였다. 어라? 뭔 한문공부? 했는데......
이제 표지도 많이 낡고....
신혼시절에는 이 책을 보며 경단도 만들고,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고추장 넣지 않은 떡볶이를 만들기도 했다. 어느날엔가는 "엄마 무릎베고 누워서 김치 담그는 것 설명을 들었는데 그걸 적어 왔어야 했는데....."하며 아쉬워 하기도 했다. (열심히 설명하는 엄마와 건성으로 듣는 딸의 모습이 눈에 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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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20091223
최초의 컴퓨터(19830126)
피아노(19860727)
추억이 담긴...../20091223
35년전.... 숟가락을 잃어버려서 이걸로 몇 주동안 밥을 먹었다. 지금 보니 혈액형도 다르네....
포탄피로 만든 잿털이와 한쌍이다.
나도 이제 이 안경을 껴도 어지럽지 않을 만큼세월이 흘렀다.
프레스토/20091223
젊은 시절과 함께한 프레스토..... 라면박스로 한박스가 넘는 사진중에서 프레스토가 나타나 있는 사진은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하다. 필림카메라 시절이라 셔터를 누를 때에도 신중해서 인지.....
19880817/ 여름휴가 길에 곡성 부근의 성진강 물가에서 야영을 했다. 요즈음도 야영 이야기가 나오면 그날밤 모래의 따스한 느낌이 생각난다.
차를 폐차하면서도 이것만은 챙겨 두었다.
폐차 직전의 기록..... 1995년 12월의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606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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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난용품/20091025
한적한 시골길이나 임도 등의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히 우리 승용차의 하부는 엉망이다. 휘고 찌그러 들고.... 연료탱크는 제 용량보다 훨씬 적게 들어 갈 정도로 찌그려졌다. 마후라는 에폭시로 때워 쓰다가 어쩔 수 없을 때 새 것으로 몇 번 바꾸었다. 비포장 길에서 미끌어져 빠지고, 지름길로 간다고 모랫길에서 빠지고, 차 돌리려고 논에 들어 갔다가 빠지고.... 올 여름에는 양구의 산길에서 조난당하기도 하고.... 이럴 때마다 남의 도움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가파른 오르막 길에서 미끌어져 어쩔 수 없이 되돌아 서기도 하고, 때로는 승용차로 이런데 까지 어떻게 왔느냐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승용차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혹시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구난용품을 장만했다. 구난용품을 가지고 다녀도 조난 당한 이후로는자신감이 줄어들었다고 해야 할지 선뜻 험한 길로 들어가기가 망설여진다. 쓸 일이 없기를 바라며 구난용품을 장만했다. 하기야 사륜구동이면 훨씬 수월하겠지만.....
최근에 구입한 것
수동식윈치(기어브레이크방식) : 2,600파운드(약1,300Kg),와이어 5mm * 20M
샤클(연결고리) :3/4인치 SWL 4.75톤용, 2개
슬링벨트 : 3인치 * 5M,일자형=2.4톤, 고리형=1.9톤, U자형=4.8톤
발펌프(트윈형)
전부터 가지고 다니던 것
와이어로프
톱과 삽
기본공구
그리고.... 밧데리 충전용 케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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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땜인두/20091009
중학교 2학년(1965년) 때 자취하던 집이 대전의 옛날 KBS 목동송신소에서 멀지 않은 충남여고 부근이였다. 자취집에 장대로 거미줄 모양의 안테나를 세우고, 구리판을 숯과 함께 땅에 묻어 어스선을 연결한 광석라디오를 만들었다. 바늘을 광석의 여기저기에 천천히 대다보면 라디오 소리가 잘 들리는 곳이 있다. 그 때에의 이어폰은 전화기에서 떼어낸 수화기나 크리스탈 이어폰이였다. 안테나와 어스선 사이에 5촉짜리 전구를 연결하면 불그스름하게 불이 켜지는 것을 알기도 했다. 그 후광석 라디오 만들기가 트렌지스터 라디오 만들기로 변하며 나의 취미로 굳어졌다고 생각된다. 아마 그 때쯤 처음으로 니크롬선을 이용한 인두를 구입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대전 중앙시장 부근의 부속품 가게와 목척교 부근의 부속품 파는 리어커를 애용하기는 군입대 전까지 계속되었다.
니크롬선 인두는 한참을 기다려야 하므로 권총형 인두가 좋긴한데 사기도 그렇고.... 그래서 권총인두를 자작하기도 했었다. 묵직한 중고 트랜스를 구입해서 2차선을 제거하고 대신 디젤엔진의 연료공급용 구리파이프로 대신하였다. 스위치는 초인종용 버튼스위치로, 손잡이는 나무로 만들었다. 이걸 군대제대 후 까지 사용하다가 취직을 한 후에 이 권총형 인두를 구입했다. 언제 구입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30년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100볼트 전용이므로 요즈음에 사용하려면 다운트랜스를 거쳐야한다. 며칠 전 스위치가 고장나서 고치기는 했지만 특히 굵은 전선 납땜하는데는 그만이다.
그리고, 그 시절 같이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은 지금도 연락하고 지낸다. 요즈음도 가끔은 납땜인두를 쓸 일이 있기도 하고.....
Color Book/20090918
나와 관련 된 물건 중에서 내가 만든 것으로는 가장 오랜 된것 같다. 중학교 1학년 때인 1964년도(동경올림픽이 열리던 해)미술시간에 만들었으니 45년이 되었다. 특별히 오래 간직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였지만 언제나 나의 책꽂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색종이가 부족해서 책에 표시한 면적보다 색종이를 작게 오려 붙이기도 하였고 자뚜리를 이어 붙이기도 하였다. Color Book이 완성된 후에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색종이를 떼어내서 다른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만들 때에는 오려 붙이라는 대로만 만들었겠지만 만든지 34년이되던 해에 색채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서야 이 책에 있는 동계색과 인근색 등이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템플릿/20090918
나는 템플릿을 '못쓰는 책받침'이라 한다. 원은 건축설계시컴파스로 원을 그리는 것 보다는 템플릿으로 그리는게편하다. 여닫이 문이 1/2원, 또는 1/4원이니 많이 사용된다. 한때는컴퓨터에 관심이 있어서에플베이직, 터보파스칼, 디베이스 등으로 프로그램을 작성하기도 했었다. 그 당시 후로우챠트를그릴 때 사용한 템플렛이다.
CAD와 제도용품/20090918
1990년대 말은 나에게는 어려운 시절이였다. 순조롭기만하던 생활은 갑자기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이런 와중에Auto CAD 릴리즈13을 이용한 기계제도를 배우게 되었다. 이미 아나로그 시절에 배웠지만 건축설계를 공부한데다 컴퓨터에 관심이 있던 터라 남들 보다는 접근이 쉬웠다. 그러나 이 또한 생활이 정상 궤도로 접어들면서 CAD를 계속해서 활용치 않으니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CAD에서 필요한 기능이 있으면 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 어려움 없이 CAD 도면을 볼 수 있다든지, 간단한 도면 정도는 작성할 수 있는 것은 그 때 공부해 둔 덕분이라 생각한다.
교육 받을 때 사용한 CAD 교재와 왜 필요한지는 모르지만 지급 받은 제도용품이다. 그리 오래 된 것은 아니지만볼 때마다 어려웠던 그 당시를 회상케하는 애뜻한 것들이다.
삼각스케일/20090918
아나로그 시절에는 설계 도면을 작성하려면 제도판, T자와 삼각자, 삼각스케일 등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했다. 물론 연필, 홀더, 지우개, 지우개판, 템플릿, 분도기, 컴파스, 디바이더, 오구 또는 로트링, 숫자/글자판 등도 필요했다. 1970년대 학창시절에도 T자와삼각자 대신 만능제도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렌데 CAD가 등장하면서이런 제도용품들이 어느새 추억의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 중에서 삼각스케일은 내가 설계분야가 아닌 건축시공 분야에 근무하면서도 늘 사용하였다. 시공현장에서는 물론 견적업무를 수행하려면 설계도면을 기본적으로 접해야 하는데, 설계도면에서 크기를 알려면 도면 축척과 같은 삼각스케일면으로 재어 보아야 한다. 1/100~1/600 스케일이 기본이고, 1/150 , 1/250 등 기본 스케일의 중간값 스케일도 있다. 길이는 20Cm 짜리도 있지만 주로 30Cm 짜리를 많이 사용하였다. 요즈음은 CAD도면이 대부분 이므로 수치를 알고 싶으면 컴퓨터에서 직접 확인힐 수 있으니 예전보다는 활용도는 적어졌다. 그래도 아직은 다른 제도용품 보다는 삼각스케일은 많이 활용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건축공사 견적업무에 오랫동안 종사했다. 견적업무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꼼꼼히 배울 기회가 있었다. 나름대로 산출하는 방법, 양식, 용어, 공종,업무 분담방법 등의 견적업무을 체계화 및 표준화하고, 내역서 작성의 전산화 등에 관심을 갖던 시절이였다.
어느날 여관에 들어 앉아서 견적에 몰두해 있는 손에는 삼각스케일이.....
계산자/20090915
계산척아라고도 한다. 1970년 대학에서 대수기하학 및 연습시간에 배웠다. 당시에는 공과대학에서 공통적으로 수강했는데 어찌나 어려웠었는지..... 졸업하면 계산자를 써먹을 줄 알았는데 그 때 쯤 전자계산기가 나왔습니다. 살 때 80Kg들이 쌀 한가마니 값인 6400원이였는데 이는 내가 기억하는 대학시절의 유일한 물가다. 그 당시엔 공대생 재산목록 1호로 돈이 궁하면 물리책과 더불어 전당포에서 인기있는 물건이였다.
30Cm짜리HEMMI 계산자
오랜만에 만져보니 어떻게 계산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한참 만지작 거리다가 2 * 2 = 4를 했다.
성적표에서.... 그 당시가 아나로그 시대에서 디지탈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한 때가 아니였을까? 대학교 졸업반 이였을 때 구조역학 교수님은 기계식계산기를 사용했습니다. 눈금 맟추고 핸들을 좌로 우로 띵띵 소리를 내며 돌려댓습니다. 핸들을 빨리 돌리기 위해서 계산기를 90도 돌려 놓고 사용했는데 마치 방공포 핸들 돌려대듯 하더군요. 그 때에는 포켓형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계산한 다음 의심스러운지 기계식계산기로 확인하는듯 했습니다. 나는 그 때까지도 시험 볼 때 이외에는계산자를 쓰거나 다른 사람들이 쓰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갔을 때에도 계산자를 가져 갔었다는 글이 있던데.....
[참고자료] http://spaceflownartifacts.com/flown_sliderules.html
상기 링크 자료는 [정범수]님이 댓글(20200507)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