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0작성

 

진티 논/1979

우리 논은 이제 주인이 두 번 바뀌었고 작년부터 큼직한 우사를 신축하는 중이다. 우마차 길은 콘크리트 포장길로 바뀌었는데 서울집을 오고갈 때 이 길을 이용하곤 한다. 지날 때마다 씁쓸하다.

대학교에 입학하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 아버지께 담배를 피워야겠다고 하였더니 돈 벌면 피우라고 하셨다. 부슬비가 내리는 초여름에 아버지를 따라서 논을 매러 진티 논으로 갔다. 비가 내리니 진티 골짜기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담배가 젖지 않도록 비닐에 싸서 바지 주머니에 넣고 갔었다. 아버지는 담배나 술이나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마는 정도였다. 둘이서 논을 매는데 오랜만에 쉬었다 하자고 하신다. 아버지는 지게가 있는 곳으로 가셔서 담배를 물으셨고, 나는 아버지 눈길을 피해서 좀 멀리 길 오른쪽에 있는 개울로 내려가서 피웠다.  오전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점심밥을 먹고 오후에 다시 논을 매러 진티 논으로 갔다. 그런데 오전과 달리 논을 매는 도중에 자주 쉬자고 하신다. 번거롭게 멀리 개울까지 가지 않고 지게 쪽으로 가신 아버지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등지고 논에 서서 담배를 피웠었다. 

 

홀목골/1979

 

 

포도밭/1979

 

 

왕버드나무/1979

어린시절 봄이면 버들피리를 만들기 위하여 물 오른 버들가지를 꺾어오던 왕버드나무이다. 속은 썩어서 없어졌지만 고목나무 치고는 생기가 넘쳤었다. 고향집에서 진티 논에 가려면 건너뜸 6촌형님 댁(빨간지붕) 앞을 지나서 왕버드나무 밑을 지나서 좀 으스스한 상여집 가까이를 지나서 논둑길로 다녔다.  왕버드나무 밑 길 아래로는 물이 솟아나는 조그마한 둠벙이 있어서 얼기미로 물고기를 잡으러 다닐 때에는 꼭 다녀가던 곳이기도 하다. 취직하여 서울에 살면서도 고향에 가서 찍은 사진이 어지간히 있는 편인데 왕버드나무가 찍힌 사진은 이것이 유일하지 않을까? 십 수 년 동안 고향에 다니지 않은 사이에 고사하였는지 사라졌다. 대신 80m 정도 떨어진 성북천변에 예전에는 없었던 끔직한 버드나무 한 그루(아래 사진)가  있다. 동네 분들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버드나무를 처음 보는 순간 왕버드나무가 없어진 대신 심은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아래 사진의 버드나무 왼쪽 교량의 왼쪽 교각 위로 멀리 보이는 팽나무도 예전부터 있던 큰 팽나무 대신 심은 팽나무이다.

 

 

왕버드나무 대신 심은 버드나무/20201102

 

 

 

 

 

 

할머니/1979

Posted by 하헌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