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 머그컵과 꽈리/20220618

 

일 년 전인가? 페이스북에서 서예가인 고교 친구 신ㅇ순이 아끼던 캘리그래피 머그컵이 깨졌다는 글을 보았다. 댓글에 내가 깨진 컵을 수리할 테니 버리지 마시라고 했다. 깨졌어도 서예가의 작품이 아닐까? 친구가 '어디 쓰시게?' 하기에 연필통으로라도 쓸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십수 년 전에 업무상 전국의 국립박물관을 수년간 돌아다니게 되었는데 수장고나 복원작업을 하는 모습을 곁눈질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개구리공예품을 모으는 취미생활을 하며 도자기 제품의 개구리공예품이 깨지면 순간접착제로 수리를 하던 경험도 있으니 머그컵 깨진 것을 수리하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었다. 깨진 면이 복잡하지 않고, 깨진 크기가 작지 않고, 깨진 조각이 다 있다면 좀 더 정밀하게 복원이 되기도 한다. 아내는 깨진 그릇을 달라는 것이 뭣하지않느냐고 하였다.

 

그리고 일 년 후인 엊그제 친구가 성북동집을 방문하겠다는 전화를 하며 깨진 머그컵 대신 손수 글을 쓴 캘리그래피 머그컵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내 컵에는 '선택, 우리에겐 또 한 번의 선택이 남아있다.'라고 쓰여있다. 나이 들어 인생을 뜻깊게 다시 시작해보자는 의미란다. 아내의 컵에는 '찔레꽃, 늦가을 햇살은 산녘에서 쉬다가고, 초겨울 바람은 들녘에서 쉬다간다. 산너머 울먹이고 있을 어느 봄날 찔레꽃'이란 친구의 시를 썼단다. 그리고,  내게는 ‘성북동 꽃밭’, 아내에게는 ‘성북동꽃’ 이라는 파란 바탕에 글귀를 썼는데 남녀의 차이(꽃밭과 꽃)를 두었다고 알려준다. 끝에는 친구의 낙관이 찍혀있다. 깨진 머그컵이 두 개의 머그컵으로 탄생한 과정과 글의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아내가 보리수 열매로 만든 시럽을 희석한 주스를 마시며 이런저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식, 손주, 친구, 주변 정리와 선택, 문학관, 블로그, 집, 뻐꾹새, 까마귀, 참새, 벌, 나비, 꽈리, 낮달맞이꽃, 향달맞이꽃, 국화, 배롱나무, 매화나무, 명자나무, 복숭아나무, 감나무, .....  

 

아래 링크한 친구의 '묵서재' 블로그에 자세하게 쓰여있다. 읽어보니 친구는 역시 공학을 바탕으로 내가 살아 온 세상과는 다른 전문분야에 속한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묵서재(석야) / 꽈리.....  https://blog.naver.com/sukya0517/222779556020  

 

 

엊그제 전화로 단지인지 커다란 화분이 있다며 가져갈까 하기에 좋지! 라고 대답했더니 엄청 큰 백자 화분도 가져왔다. 

 

 

재작년에 성북동집 꽃밭에 꽈리가 풍성하게 열렸었다. 작년에 친구가 꽈리를 키워보고 싶다 하였으나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대부분 꽃밭에서 사라지거나 제대로 자라지 않아서 도저히 나누어 줄 처지가 아니었다. 올해도 친구가 꽈리를 키워보고 싶다기에  5월 7일  화분에 옮겨 심어두었다. 꽈리 화분을 친구에게 전해주려고 몇 번 연락을 취하였으나 각자 일이 있어서 접점을 찾지 못하였는데 엊그제 만날 약속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연말까지 업무 출장 예정이지만 어디로 출장을 가는지는 일정기간 이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언제 성북동집에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절묘하게 접점을 찾은 것이다.   

꽈리가 여러해살이풀로 옮겨심기 어려운 식물이라고 하지만 옮겨 심은지 40여 일이 지났으니 안심이 된다. 꽃이 피기 시작하며 꽃가루받이가 잘되도록 꽈리 무더기 주변에 두었더니 열매도 열렸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장소로 데크에 파라솔을 펴고 탁자를 마련하였다. 야외데크에 파라솔을 펴서 그늘을 만들기는 하였지만 해가 움직이는 대로 그늘이 지도록 의자를 옮겨야만 했다. 내가 둔해서인지 친구 부부와 이야기를 할 때는 몰랐는데 돌아가고 나서야 야외데크가 더웠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방으로 들어갈 걸 그랬나?  보리수 열매를 따주려는 것도 잊었다. 친구! 더위에 참느라 고생하셨네.

 

 

  3년 전의 이야기를 보려면....  https://hhk2001.tistory.com/6015 

친구는 두 번째 성북동집 방문이다. 코로나-19로 세상이 혼란하기 전인 2019.07.20에 다녀갔으니 어느새 3년이 지났다.

 

 

 

Posted by 하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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