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에는 제가 군대생활하는 중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사랑방에서 사용하던 등잔인데 사용치 않은지 30년이 넘었습니다.
석유는 "아지나 동태~ 서이규지름 사시요~"를 외치며 엿가위를 철커덩 거리며 지게에지고 다니며 팔았습니다.
군용 5갤론 석유통에 호스를 꼽고 입으로 호스를 빨아서 대두병에 넣어 주고 침을 퇘퇘 뱃던 생각이 납니다.
석유병은 종이를 말아서 마개를 하고 노끈으로 못에 걸어 두었었지요.
등잔불은 심지가 낮으면 불이 어둡어 성냥개피로 심지를 쑤셔서 돋우면 불은 밝아지지만 그으름이 나지요.
그러면 불을 줄이려고 심지를 손가락으로 살짝 빼는데 기름이 묻어 냄새가 납니다.
잘 못하다간 심지가 쑥 빠져서 불을 커트리기도 하지요.
심지가 빠지면 정말 난감하구요.
이 등잔불 아래서 어린시절 친구들과 윷놀이도 하고, 연도 만들고, 고구마도 깍아 먹고....
그 시절에도 공부 할 때는 호야를 켜거나 촛불을 켰습니다.
20080331
예전에 가마니를 만들 때 짚으로 짠 다음 반으로 접어서 양쪽 가장자리를 꿰어맬 때 사용한 바늘입니다.
실은 물론 가는 새끼구요.
고향집에서 사용하던 것입니다.
20080331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 개다리소반에서도 밥을 먹었으니까요.
제가 보관하며 사용하는 중에도 다리 밑판이 두어번 빠져서 순간접착제로 수리도 했구요.
20080331
고향집 부엌과 마루 사이에 있던 샛문입니다.
사람은 부엌문으로 들랑거리고 이 문으로는 주로 밥상이 왔다갔다 했습니다.
물론 위에 있는 개다리소반도 그랬구요.
할머니가 신혼시설 봄나물 뜯으러 부근에 와서 집짓는 것을 보고 부러워 했답니다.
나는 언제 저런 집에 살아 보나....
그 때는 동네에서 좀 떨어진 외딴 곳에 사셨는데 그 곳은 제가 어렸을 때에도 이미 사람이 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살던 흔적으로 감나무가 있었지요.
그 외딴집에서 동네로 이사 하신다음 다시 이사 온 집이 신혼시절 부러워했던 그 집이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초가집이던이 집도 새마을 운동으로 지붕만 시멘트기와로 바뀌었구요.
할머니가88세로 돌아가시며 새집을 짖기 위해서 이 집을 철거하며 나온 것을 제가 수습해 왔습니다.
왼쪽 문짝에는 세로로 "우리집"이라 쓰여 있는데 "우"자는 옛날에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나 셋째나 넷째가 썼을겁니다.
그리고 오른쪽 문짝에 달린 체인은 문짝이 저절로 열리지 않도록 왼쪽 문짝의 조롱박이 걸린 곳에 고리로 걸었습니다.
이 체인을 반지름으로 원이 그려 있는데 이는 어릴 때 놀면서 심심하면 체인을 돌려서 문짝에 흠집을 낸 것이구요.
색갈이 약간 노랗게 보이는 것은 제가 성인이 된 후에 다시 칠해져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제 제가 가져온지 22년이 지났습니다.
가만히 두는데도 세월이 흐르다 보니 부서지기도 하네요.
그래도이 문짝에는 제 어린시절의 추억이 담겨있습니다.
200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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