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면서 조계사에 오는데 31년이 걸렸습니다.

숭례문 화재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가는 친구 따라 다녀와서 소라절 다녀 왔다고 하더군요.

소라도 조개의 일종이죠.

그래서 우리는 여기를 소라절이라고 합니다.

서울 한 복판인데도 한가로운 느낌이군요.

휘익 둘러 보고 절 뒷편에 있는 보성사터의 명판을 보니 여기가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이라는군요.

그리고 조계사 경내에 있는 큰 나무인 홰나무가 언급되어 있군요.

제가 기억하는 것 중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것은 고향집 근처에 있는 홰나무 아래서

친구와 소꿉놀이 하고 놀다가 속옷 입었다는 친구의 자랑을 들은 기억이지요.

어른들이 그네를 매주기도 했던 그 나무는 한아름 좀 넘는 고목이였습니다.

제가 30대 중반쯤 되었을 때그 나무는 죽고 부근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서 새끼나무가 나왔습니다.

희귀한 나무라 여겨저서 나뭇잎을 책갈피에 넣어 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에 우연한 기회에 내가 알고 있던 고향의 홰나무가 회화나무라고 알게 되었구요.

어린줄기는 녹색이고 잎과 꽃은 아카시나무와 비슷하며 냄새가 좀 독하지요.

그런데 오늘 회화나무가 아닌 홰나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니 새삼스럽게 옛생각이 나는군요.

물론 소라절에 다시 가서 홰나무를 또 보고 왔습니다.

이 글을 올리면서고향동네의 홰나무와 조계사 홰나무가 같은 종류인지 인터넷에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같은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움이 트기 사작은 했지만 나뭇잎 모양을 확인 할 수는 없네요.

잎이 제대로 나오면 확인해 보렵니다.

홰나무를 회나무 또는 회화나무라고도 하며 귀하고 신성시 해서 함부로 아무데나 심지 않았다네요.

선비의 집, 서원, 절, 대궐 등에만 심을 수 있었답니다.

그러고 보니 그 나무가 있던 부근의 친구네 집이 절집이였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거기서 봉소사 부처를 만들 때 동네 형들이 장난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그 집에 살던 친구를 다음주에 만나는데 한번 이야기해 보렵니다.

1000원권 지폐 뒷면의 정원 그림 중에도 홰나무가 있다는군요.

200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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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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