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리와 무두리아저씨/20200630

 

작년(20191106)에 장태산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에 방동저수지에서 진잠주민자치회에서 '우리동네 지도'를 만드는 팀을 만났었다.

호기심에 가던 길을 멈추고 설명을 들었는데 언뜻 무도리가 물이 돌아간다는 '물돌이'에서 유래된 지명이 아니겠냐는 말을 들었다.

그때에는 그냥 스쳐지나갔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무두리 아자씨'라고 칭했던 당숙어른이 떠올랐다.

 

 성북동집이 내가 어렸을 때에는 무두리 아자씨가 사셨고, 사촌이 없으니 가까이 사신 당숙 집안과 더욱 긴밀한 사이였다.

당숙어른은 하루 일을 마치고 우리 집에 오시면 어머니께서 주신 막걸리 한 사발을 부엌문 앞에서 받아 드시곤 하였다.

막걸리 한 사발을 유난히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마시셨는데 목구멍이 좁으신지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여러 모금으로 오랫동안 마시곤 하셨다.

내가 어려서는 나무 접의자와 이발기구를 가지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머리카락이 긴 사람을 만나면 아무데서나 이발을 하시는 일도 하셨다.

당연히 나도 머리카락이 길면 무두리아자씨가 상고머리로 깎아주곤 하셨다.

 

 당숙모가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린 날 우리집에 바느질거리를 가지고 오셔서 어머니와 같이 바느질을 하시며,

가마솥에 밥을 삶아 먹었는데 헛간에서 도둑고양이가 나왔던 기억이 새롭다.

 

 중학교 때 대전 이모님 댁이나 자취를 할 때에는 토요일에 집에 왔다가  일요일 저녁에 대전으로 가곤 하였다.

하숙비를 쌀로 주었으니 갈 때마다 한 자루씩 가지고 갔는데 멜빵보다는 큰 자루에 느슨하게 담아서 목마 태우듯이 메고 다녔다.

어머니와 당숙모가 산징이고개(성재고개)끼지 이어다 주시면 받아서 메고 산길을 내려와서 관저리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여덟 살 많은 육촌 형님에게서 한글을 배웠는데 '가나다라....'를 외우며 냇가 길을 따라서 관수형네 집 앞까지 달려갔다 오곤 하였던 기억도 난다.

 

 이 글을 쓰며 갑자기 초등학교 2학년이 되자마자 담임선생님이 '담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칠판에 나와서 써 보라고 하셨다.

우리 반이 60여명 되었는데 몇몇이 나와서 쓰기는 하였지만 아무도 정답을 쓰지 못하였다.

그 때 담임선생님은 나의 학창시절 중에서 유일한 여선생님으로 사범학교를 막 졸업하신 김ㅇ자 선생님이셨는데  얼마나 참담하셨을까!

(이야기가 옆으로 샜네....)

 

'물돌이' 이야기를 들은 후 몇 번 성북천 하류의 방동저수지를 지나서 흑석리에서 갑천과 만나서 가수원쪽으로 흐르는 냇가를 살펴보았다.

구봉산 남쪽의 흑석리를 지날 때 갑천이 유난히 굽이치는 곳이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자세히 살펴보고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 보았다.

찾지 못하고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엊그제 육촌 형수님을 뵐 때 생각이 나서 여쭈어 보았다.

육촌 형님이 살아계실 때 할머니 산소에  따라 가 보셨다며 방동에서 고개넘어(나뭇골, 삿갓동네)에서 호남고속도로 밑을 지나 물 건너 동네란다.

지도를 찾아보니 신주소에 '무도리길'이 있고 두계(계룡시)를 지난 두계천이 위왕산 남쪽에서 동네 이름처럼 동네를 감싸고돈다.

내가 찾아보았던 범위는 벗어났지만 성북동에서 그리 먼 동네는 아니고 호남선 기차 타고 지나다녔던 동네이다.

 

 

 

 

 

Posted by 하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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