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20200328
내가 이발을 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당숙이시며 대전 성북동 우리집에 사셨던 무두리아자씨가 깎아주신 것이다.
동네에서 접이형 나무의자와 이발용품 가방을 가지고 다니시다 머리가 긴 남자를 보면 어른 애 할 것 없이 적당히 자리를 잡고 이발을 하였다.
이발비는 봄과 가을에 추수하면 보리와 쌀로 두 차례 지불한 것으로 안다.
폭이 넓은 혁대에 면도칼을 문지르는 능숙한 모습이 아련하다.
이발을 할 때면 간지러워서 몸을 움직인다고 많이 혼나기도 했다.
무두리아자씨가 대전으로 이사를 가신 후에는 두 손으로 잡고 깎는 바리캉(이발기)을 사다가 아버지가 깎아 주셨다.
형제들이 머리카락이 굵고 억세서 깎는 도중에 머리카락이 씹히기라도 하면 한 손으로 이발기를 잡고 한 손으로 이발기를 분해해야 했다.
눈물을 흘리며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뽑히는 듯 하는 아픔을 참아내야 했는데 이발 할 때마다 한두 번은 이런 일이 생기곤 하였다.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상고머리였으니 머리를 깎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학교 들어가며 빡빡이로 깎을 때에는 내가 그 이발기로 동생들 머리를 깎아 주기도 하였었다.
군대생활 할 때에는 후임들이 머리가 길면 내가 깎아주기도 하였는데 양재기를 머리에 씌우고 밖으로 나온 부분을 이발기로 깎고,
나머지 부분은 가위로 다듬어서 깎았었다.
신혼시절부터는 아무데서나 머리를 깎지 않고 단골 이발관을 고집하기도 하였다.
이사를 가면 어쩔 수 없이 그 동네에서 단골을 다시 정하기도 하였지만 발산동에 와서는 30여분 거리의 화곡동 단골집을 다니기도 하였다.
이렇게 단골 이발소를 고집스럽게 이용한 것이 아마도 35년은 되지 않았을까?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에 전기이발기를 구입하였는데 중이 제 머리를 깎을 수 없으니 아내가 이발사가 된 셈이다.
아내는 미용실에 갔을 때 어깨너머로 본 것을 토대로 예전부터 딸내미 머리를 손질해 주기는 하였지만 머리를 깎아보기는 내가 처음이다.
큰집 손자가 몇 번, 작은집 손자가 한 번 머리를 깎기는 하였지만 유일한 단골은 나 밖에 없는 셈이다.
예전보다야 머리카락도 가늘어지고, 부드러워지고, 많이 빠지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기는 하지만 아직은 풍성한 편이다.
꼼꼼하게 깎다보니 이발하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대충대충 깎으라고 해도 막무가내이다.
솎아 달라는 주문은 머리숱이 많이 줄었다며 매번 무시되지만 다른 주문은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깎아준다.
면도와 머리 감기와 이발기 청소 및 충전시키는 것은 내가 스스로 하지만 그래도 우리집이 나의 단골 이발관이다.
어제는 미용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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