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성북동(산징이고개_옛 등굣길-2)/20191105

 

 

051.  구슬바위??

가운데서낭에서 등성이를 따라서 곧게 올라오던 옛길이 경사가 완만해지며 바위를 넘어가는 곳에 이른다. 

바위가 평평하지는 않지만 둥글둥글한 표면에는 여러 개의 구슬치기 할 때 팠던 크기의 둥그렇게 패인 곳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형들이 돌로 팠다고도 하였는데 우리들도 쉴 때에는 돌로 패인 부분을 더 쪼아보기도 하였었다.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하여 가지고 다니던 작대기로 표면의 낙엽과 흙을 걷어내 보려고 하였으나 역부족하여 포기하였다. 

(분명 이 바위도 이름이 있었을 텐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포스팅하며 친구인 강ㅇ덕에게 전화로 물어보았더니 모르겠다며, 성북동의 옛 지명을 잘 알고 있는 형님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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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구덩이가 패인 바위에서 왼쪽 길(화물차가 보이는 도로) 사이의 삼각형 모양의 땅에는 몇 배미의 논이 있었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산징이고개 정상에 가깝게 작은 면적이지만 논이 있다는 것이 당시에도 신기하게 생각 되었다.

밭벼가 있다는 것도 여기서 처음 보았던 곳이다.

 

 

 

055. 삼각형 모양의 논을 왼쪽으로 끼고 올라가면 드디어 신뜸으로 가는 길과 만난다. 

옛길이 사라져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사진 가운데 하얗게 보이는 부근의 왼쪽으로 곧게 올라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056.  웃잣디(신뜸)로 가는 길과 만나는 곳이다.

예전에는 오늘 거슬러 올라온 고향동네인 가운데잣디로 가는 길이 큰 길이고 웃잣디(신뜸)로 가는 길이 작은 길이었다.

지금은 첫서낭에서 공기바위를 거쳐서 오는 이 길은 차량통행이 가능하고 옛길은 폐쇄된 상태이다.

이 길이 차량통행이 가능한 도로로 바뀐 데에는 도로 북쪽으로 공동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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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  예전에는 왼쪽으로 공동묘지가 훤히 바라다 보이던 곳이었는데 나무가 우거져서 지금은 공동묘지가 있는지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하교를 다니면서부터 늘 지나다니던 길이였지만 커서도 비 오는 날이나 밤에 지날 때에는 으스스한 생각이 들던 곳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늦게 하교할 때 산징이고개를 넘기 위하여 솔잎을 팔뚝 크기로 말아 묶어서 불을 붙여서 호호 불며 다니기도 하고,

통조림 강통의 한 면을 트고 반대쪽 원통 면에 큰 구멍을 뚫어 심지를 박은 활명수 병을 끼운 일명 석유 플래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불을 붙이는 위쪽의 원통 면에는 연기가 나갈 구멍을 뚫었는데 열기도 대단하고 그을음이 엄청나기는 하지만 나름 바람에 강한 장점도 있었다.

모두 건전지를 사용하는 플래시가 귀하던 때의 이야기이고, 그 후로는 ㄱ형 군용 플래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어린 마음에 C형(대형) 건전지를 넣는 플래시에 B형(중형) 건전지를 종이에 말아서 넣으면 값이 싸니까 절약이 되는 것으로 알기도 하였었다.

 

 

 

059. 성북산성 방향으로 허물어 진듯 한 돌무더기가 보이던 방향인데 나무와 잡풀이 우거져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가 보지는 않았지만 돌무더기 위쪽으로 친구 윤ㅇ환네 밭이 있다고 들었다.

 

 

 

060.  산징이고개 정상이 보인다.

산징이고개를 넘어 다니던 사람들은 가운데잣디나 웃잣디(신뜸)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들과 반대방향으로 다니는 나무꾼이 있었는데 웃잣디(신뜸) 방향으로 갔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관련 글을 보았는데 막상 링크를 걸려고 다시 찾으려니 보이지 않는다.

어느 문중에서 나무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던데....

나무꾼들은 형이나 아저씨뻘 되는데 집에서 땔감으로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 나무를 하는 것이었다.

나무지게를 받쳐놓고 쉴 때 지나가면 누나 있냐는 둥 짓궂은 질문을 하기도하고 자기들 끼리 뭐가 그리 좋은지 웃기도 하고.....

산징이고개를 혼자서 넘어 다니기에는 위험하기도 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중학생이 되고서나 혼자 넘을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여학생들은 더욱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까?

문둥이가 간을 빼 먹는다는 둥, 늑대가 나온다는 둥, 여우가 홀린다는 둥, 공동묘지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둥..... 

 

 

 

061.  산징이고개(잣디고개, 성재) 정상

분수령의 성북동 방향으로 길의 북쪽에 먹지는 않았지만 물이 나서 고여 있는 조그마한 웅덩이가 있었다.

물은 깨끗해 보이기는 하였지만 경사면 바로 위쪽이 공동묘지이기에 먹지 않았다.   

 

 

 

062. 성북동산성 및 산장산 방향으로 가는 대전 둘레 산길 10구간.

예전에는 길이 아예 없던 곳인데 지금은 둘레길이 생겨서 쉽게 오를 수 있다...

성북동이란 동네이름은 백제시대 산성이 있었기에 생긴 것인데 정작 산성에 올라가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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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성북동산성

 

[출처] 발자국의 미/발걸음 : [성북산성] 황산으로 가는 길(대전 성북동산성).....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sseol&logNo=30131951446&proxyReferer=http%3A%2F%2Fwww.google.co.kr%2Furl%3Fsa%3Dt%26rct%3Dj%26q%3D%26esrc%3Ds%26source%3Dweb%26cd%3D1%26ved%3D2ahUKEwjLh-Xf-O7lAhUOQd4KHRa0D0YQFjAAegQIABAB%26url%3Dhttp%253A%252F%252Fm.blog.naver.com%252Flsseol%252F30131951446%26usg%3DAOvVaw1qSGTizagN5nDkSKl2DV3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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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 그냥 경사가 심해서 침목을 이용하여 계단을 만들었겠거니 생각하고 올라갔다.

그런데 내려오며 생각해 보니 이 경사면이 산성자라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경사면이 주욱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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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운동기구가 있는 작은 봉우리.....

 

 

 

074. 운동기구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오르니 등산객 두 분이 있다.

그중 한 분에게 말을 걸었더니 원내동 샘ㅇ타운에 사시는 분인데 운동 삼아 산장산을 거쳐서 능선길을 따라 성북동산성까지 오셨단다.

꽤 오래 사신 분이기에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대전농업기술센터 방향으로 하산하신단다.

일부 구간이 내가 가는 길과 겹치기는 하지만 사진 촬영하며 여유롭게 가야 할 상황이기에 동행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부터 20여년 생활의 일부분으로 넘어 다니던 산징이고개가 운동 삼아 등산하는 길로 기능이 변한 것이다.

이제 잣디 사람들도 외지에 나가려면 산징이고개를 넘지 않고 방동저수지를 거쳐서 1시간 40분마다 다니는 시내버스를 타고 다닌다.

시내버스 노선이 처음 생겼을 때에는 버스를 놓치면 당연히 산징이고개를 걸어서 넘어 다녔는데,

ㅇㅇ는 걷지 않고 막걸리 한잔 마시며 기다렸다가 다음 버스를 타고 오더란다 하는 말이 들리기도 하였던 시절이 있었다.

(잣디 사는 모든 분들이 차만 타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다음날(1106) 만난 후배님은 버스를 놓쳐서 등산로로 걸어 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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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7.  성북산성에 다녀와서 잣디고개를 넘어서 원내동 방향으로 향하였다.

현재의 길은 차량 통행이 가능한 임도로 산징이고개에서 예전 가마길로 가다가 빈계산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예전의 산길은 사진 중간에 길이 끊겨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골짜기를 따라서 내려가야 한다.

하굣길에 어렵게 꼬부랑길을 올라와서 쉬어가던 곳이기도 하였다.

1958~1964년에 초등학교를 다녔으니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쉬는 장소 부근에서 탄피 등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기도 하였다.

대전 용운동 이모님 댁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관저리가 종점인 대전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서 일요일 저녁 때 이 길을 이용하였다.

갈 때마다 하숙비? 명목으로 쌀을 한 자루씩 지고 다녔는데 산징이고개까지는 어머니와 현재의 성북동집에 사시던 당숙모가 여다 주셨다.       

 

 

 

078. 산징이고개에서 말바위까지 급경사면을 갈지(之)자 모양으로 6~8번 정도 꺾어 내려가던 길이 있었다.

어지간하면 옛길을 찾아서 통과하려고 임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내려갈 곳을 찾아보았으나 급경사에 잡풀이 우거져서 접근이 되지 않는다. 

임도를 넓히며 나온 돌들이 비탈면에 굴러 내려갔는지 위태롭게 보이는 돌도 보이고 길이 있었다는 흔적은 보이지도 않는다.

동행이 있었다면 무리를 하였을 텐데 혼자서 가는 길이다 보니 위험한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성북동집 옆집에 사는 안ㅇ권은 이 길을 아리랑길이라 부르던데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밤에 혼자서 이 갈지(之)자 길을 걷게 되었는데 한 쪽 방향으로 갈 때마다 같은 종류의 소리가 들려서 머리카락이 쭈삣하기도 했었다.

가까이 갔을 때 무슨 소리인지 확인해보니 마른 갈참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서로 부딪혀서 나는 소리였다.

 

 

 

079. 가마길 초입

산징이고개에서 급경사면을 갈지(之)자로 내려가는 길로 가지 못하는 대신 가마길로 들어섰다.

학교 다닐 때에도 하굣길에 더러는 경사는 완만하지만 시간이 더 걸리는 가마길을 이용하기도 하였었다.

 

 

 

080.  가마길.

진잠은 조선시대 진잠현(1985년까지), 그 이후로는 진잠군이었기에 동헌이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진잠동 행정복지센터 내에 있는 '기성관'이 남아 있다고 한다.

나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한 학기는 진잠향교에서, 한 학기는 진잠동헌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동헌 건물이 '기성관'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학교와 너무 가깝고 동헌 진입로 앞에 샘이 있지 않았나 하는 어렴풋한 기억과 너무 차이가 난다.

그건 그렇고....

옆집 사는 안ㅇ권의 윗대 할아버지가 경기도 화성 분이였다고 한다.

안ㅇ권이 우리 아버지에게 들었다는데 윗대 할아버지가 진잠으로 부임하면서 성북동에 정착하셨다는데 그 때 가마길이 생겨났단다.

산징이고개에서 말바위까지 급경사면을 갈지(之)자 모양으로 가는 대신 좀 멀리 돌아가지만 가마가 다닐 수 있는 완만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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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  산징이고개에서 가마길을 따라서 내려가다가 예전에 유성으로 걸어가는 산길이 임도가 되었다.

가마길은 여기서 쌍암약수 표지판 방향으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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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5.  가마길이 임도에서 갈라진 초입은 계단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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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8. 쌍암약수터

쌍암약수로 내려가는 길이 말바위 위에 있다는 것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말바위 조금 아래에서 비탈을 따라 내려가며 샘이 있었다.

학교 다니던 길에서 일부러 물을 마시기 위해서 내려갔다 오기는 좀 멀다는 기분이 드는 거리지만 자주 물을 마시러 다녀왔다.

샘이 있던 장소는 아마도 대전농업기술원 서쪽 본 건물쯤이 아니었을까?

농업기술원 부지 내부이기에 옮기지 않았을까하는 합리적인 생각을 해 본다.

그나저나 말바위 아래에서 내려가는 길이 있으려니 하고 더 내려갔더니 길이 없어서 쌍암약수터에는 가보지 못하였다.   

 

 

 

089. 이 부근에서 갈지(之)자 모양의 길로 이어지는 좀 완만한 샛길이 시작되었는데 흔적이 보이지는 않는다.

 

 

 

090.  말바위 바로 위쪽에서 가마길과 산징이고개로 올라가는 갈지(之)자 모양의 길이 갈라지는 곳이 여기쯤이 아닐까?

몇 발짝 들어가 보았는데 아카시나무 가시가 옷에 걸려서 움직이지 못하겠다.

옷에 걸린 가시를 떼려니 다른 가시가 걸려서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되돌아 나오기도 만만치 않다.

산징이고개에서 진입하지 못하였기에 말바위 쪽에서라도 들어가려고 했는데 아쉽다.

 

이 부근은 겨울철 등굣길에 고구마를 가지고 와서 덤불 속에 숨겨 두었다가 하굣길에 찾아 먹던 곳이다.

냉장고에서 꺼내먹는 생고구마 맛이랄까? 

 

 

 

091.  말바위

40년??

얼마 만에 보는 말바위인가!

20여년 넘어다닌 옛 등굣길을 걸으며  산징이고개 만큼이나 감동스런 순간이었다.

낙엽을 뒤집어쓰고 있기는 하였지만 말바위의 모습은 예나 다름이 없었다.

 

 

 

092.  말바위

오랜만에 말바위를 타 보았다.

말바위를 탄 모습을 찍어 볼까 궁리를 해 보았으나 여의치 않다.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었으나 말바위는 보이지 않고 내 모습만 덩그러니 찍혔다.

말을 탄 상태에서 바위 모습을 찍으면 내가 말을 타고 보는 풍경이 아닐까 해서 이렇게라도 찍었다. 

산징이고개길을 걸어 다닐 때였다면 어린이들이 여기서 쉴 때마다 너도 타고 나도 타보느라  말바위에 낙엽이 쌓일 틈이 없었을 텐데....

산길이 남아 있으니 운동 삼아 산징이고개를 넘는 어른들이 지나다닐 텐데 말바위를 타는 재미를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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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  산징이고개를 넘어보니 전반적으로 나무가 빽빽하고 키도 커서 전망이랄 것이 없어졌다.

예전에는 어디서 보나 주변의 산야가 훤하게 바라다 보이던 곳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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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6.  말바위에서 좀 더 내려가면 길바닥에 있던 바위인데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고학년 때에는 뱀을..... (더는 표현하기가 적절치 않다) 

 



■ 20191103 (대전 성북동+동네 한 바퀴+학교 다니던 옛길 걷기+장태산자연휴양림 : 혼자가서 둘이 지냄 : 7박8일 : 416Km) -오후 출발-발산ic-올림픽대로-경부고속-호남고속-서대전ic-성북동(192Km)(1103)--동네 한 바퀴/건너뜸(둘이서 : 1104)--주막거리-웃둥구나무-포강-첫서낭-가운데서낭-산징이고개(성재/성북동산성)-가마길-말바위-영주기도원-작은구렁-큰구렁-진잠초등학교-41시내버스(처음 타 봄)-성북동(학교다니던 옛길을 따라서 걸음 : 혼자서 : 1105)--방동저수지(000 만남)-세점길-봉곡마을-흑석네거리(흑석리역)-장안로-장태산자연휴양림(되돌아서)-장안로-흑석네거리-봉곡마을-세점길-방동저수지-4-진잠(점심+장보기+두더지약)-4-방동저수지-성북동(둘이서 : 1106)--박ㅇ석 다녀감-참취 씨 채취(1107)--서리내림-백일홍 탈색-호박 및 토마토 수확-별채방 창문 방풍작업-스프링쿨러 및 세차호스 철거-샤워장 수도 동파방지 작업-모터펌프 동파방지 작업-열대식물 데크로 옮기고 간이 온실 만듬-화분 창고로 옮김-김장 준비3(1108)--서리내림-꽃 피지 않은 국화 뽑기-김장-볏짚(진치)-대봉 감따기(1109)--본채 방 창문 방풍작업-PC-꽃양귀비+접시꽃 씨앗 뿌림(1110)-참취씨 전달-진치골(진티)-진치고개-중세동-중세교차로-1-삽재교차로-박정자삼거리-월송교차로-23차령로-정안-유천교차로-1세종로-43(비 내리기 시작)-평택대교-길음교차로-강변로-안중-39서해로-양촌ic-42수인로-목감ic-서해고속-서부간선-남부순환-강서면허시험장-


 

 

Posted by 하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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