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인가 가족과 함께 정선으로 여름휴가를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 생가가 있다는 말을 듣고 봉평에 들렀다. 여기서 국도를 이용하여 둔내로 오는 길에 산을 하나 넘게 되었다. 고갯길이 시작되면서 차츰 민가도 띄엄띄엄 나타났다. 그런데 도로 변에 웬 통닭집(간판에 신속배달이라고 쓰여 있음)이 있지 않은가! 누가 사먹는다고 이런 곳에 통닭집이 있을까 하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여기가 스키장 입구임을 알고 대화는 시지부지 끝났다. 그리고 고갯마루에 도착하니 커피자판기가 있고 태기산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이렇게 우연히 태기산을 알게 됐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천체사진 촬영지로 태기산이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아내와 함께 다시 태기산을 찾았다. 고갯마루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갔다. 바람이 무척이나 심한 저녁때였다. 사방이 탁 트이고 저기쯤 정상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니 한 사람이 와 있었다. 사진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찾은 것 같았으나, 바람이 심하여 사진촬영에 적합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물어 보기로 했다. 몇분이 오셨어요? 셋이 왔는데 저 아래로 닭사러 갔어요. 닭사러요?? (아내가 정색을 하면서 되물었다. 지난번 봉평에서 올라오다가 본 신속배달 간판의 통닭집이 생각난 모양이다. 천체사진 찍으러 와서 통닭을 사다먹으려고 내려갔다는 것이 얼른 이해가 가지는 않는 듯 했다) 이런 동문서답이 오고가는 중에 닭사러 간 것이 아니라 답사하러 간 것임을 알고 크게 웃은 생각이 태기산에 갈 때마다 난다. 이날 저녁 답사하러 갔다는 곳이 바로 둔내 쪽에서 올라 가다가 좌측 임도를 통해서 들어가는 서쪽이 트인 넓은 공터에는 우리 보다 먼져 내려가 사진을 찍던 K씨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됐다. 그리고 여기서 임도를 타고 더 들어가면 개울이 나타난다. 여기도 괜찮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임도의 끝에 가면 남서쪽에서 북서쪽까지 트인 곳이 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이곳에 갔을 때 다른 사람을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정말 호젓한 곳이다.

봄철의 태기산은 아직 잔설이 있고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초행길을 가는 기분이어서 좋다. 산 아래도 서울보다 보름 정도는 나뭇잎이 늦게 돋아나지만 올라가면 눈과 어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가 산불예방 기간이어서 출입통제가 있으며, 올해에는 입구에서 신고하고 들어갔다. 여름철은 모기도 없고 어찌나 시원한지 호사스런 기분이 든다. 겨울철은 인근 스키장 불빛과 폭설로 인한 교통통제와 관광차량으로 인한 교통정체 등의 이유로, 사자자리 유성우 이후에는 봄철까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신경 쓰이는 것은 서쪽에서 머리 위를 통과하여 동쪽으로 이어지는 항공로이다. 장시간 노출을 주는 고정촬영을 주로 하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일이다. 초저녁이 더욱 심하다. 놓친 고기가 크다는 말이 있듯이 잘 찍힌 사진에는 꼭 비행기 지나간 표시가 있다. (200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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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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