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온수리(전등사 입구-삼랑성)/20120429
병인양요 [ 丙寅洋擾 ]
요약
1866년에 대원군의 천주교도학살과 탄압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침입한 사건.
본문
1866년(고종 3)에 대원군(大院君)의 천주교도학살과 탄압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침입한 사건. 1866년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禁壓令)을 내리고 프랑스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천 명을 학살하였다. 이를 병인박해 또는 병인사옥(丙寅邪獄)이라 한다. 이 박해 때 프랑스선교사 12명 중 9명이 잡혀 처형되었으며, 3명은 화를 면하였는데 그 중 리델은 청나라로 탈출, 프랑스동양함대 사령관 P.G. 로즈에게 박해소식을 전하면서 보복원정을 촉구하였다. 이에 로즈가 함대를 이끌고 내침하여 한·프간의 군사적 충돌을 야기하였다. 로즈의 제1차원정은 강화해협을 중심으로 한 수도 서울까지의 수로를 탐사하기 위한 예비탐사로, 9월 18일부터 10월 1일까지 지세정찰과 수로탐사를 한 뒤 지도 3장을 만들어 돌아갔다. 이어 10월 5일 한강봉쇄를 선언, 10월 11일 제2차원정에 올라 병력 1000명·군함 7척·대포 10문과 리델신부를 대동하고 강화도로 내침하였다. 10월 16일에 강화부를 점령, <우리는 자비로운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우리 동포형제를 학살한 자를 처벌하러 조선에 왔다>라는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조선이 선교사 9명을 학살하였으니, 조선인 9000명을 죽이겠다>는 강경한 응징보복의 자세를 밝혔다. 강화도가 실수(失守)되어 위급하게 되자, 정부는 순무영(巡撫營)을 설치하였다. 대장에 이경하(李景夏), 중군에 이용희(李容熙), 천총(千總)에 양헌수(梁憲洙)를 임명하여 출정하게 하였다.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10월 26일 문수산성(文殊山城)전투에서 조선군을 제압하였다. 이때 양헌수는 어융방략(禦戎方略)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작전계획을 세웠다. 그는 대군을 이끌고 덕포에서 비밀리에 심야 잠도작전(潛渡作戰)을 전개, 강화해협을 건너서, 정족산성(鼎足山城)을 점거하였다. 조선군이 강화해협을 건너가 정족산성에 농성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로즈는 올리비에대령에게 정족산성 공격을 명하였다. 11월 9일 일대 격전이 벌어졌으나, 접전의 결과 프랑스군은 전사자 6명을 포함하여 60∼70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조선군은 전사자 1명, 부상자 4명이었다. 정족산성승첩(鼎足山城勝捷)은 화력면에서 열세인 조선군이 양헌수의 뛰어난 전략에 의하여 근대식 병기로 장비한 프랑스군을 격퇴하였다는 것과 이 싸움의 실패로 로즈함대는 원정을 포기하고 강화도에서 철수하게 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프랑스군은 10월 14일 상륙 이래 거의 한달 동안 강화도를 점거하였으나, 정신적·육체적으로 피로하여 야포를 동원하여 정족산성을 재공략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포기하고 11월 10일 함대를 철수하였다. 이 싸움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퇴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프랑스군은 강화도에서 철수할 때 고도서 345권과 은괴 19상자 등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로즈의 원정은 제2차원정이 끝날 때까지 무려 두 달에 걸친 장기원정이었다. 원정을 끝내고 청나라로 돌아간 로즈는 선교사 학살에 대한 응징적 보복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공사 벨로네를 비롯한 베이징[北京(북경)]의 모든 외교관들은 그의 원정을 실패로 간주하였다. 첫째 외교적 입장에서 보면, 수교관계가 없는 조선으로 가서 조선개항을 위해 입약협상(立約協商)조차 벌이지 못한 채 돌아왔다는 것이다. 둘째 군사적 입장에서 보면, 정족산성에서의 패전 직후 곧 함대를 철수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조선원정의 목표가 선교사 학살에 대한 응징보복인데 보복은커녕 오히려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와 쇄국정책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프랑스정부는 공식적으로 이 원정을 성공이라고 간주하였다. 예를 들어 1867년 3월 미국정부가, 미국은 제너럴셔먼호사건으로, 프랑스는 병인사옥으로 인하여 피해를 보았으니 대(對)조선 미·프 공동원정을 제의하였을 때, 프랑스정부는 이미 조선원정을 통해 응징보복을 하였기 때문에 공동원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거절하였다.
[원문출처]파란백과..... http://dic.paran.com/dic_ency_view.php?kid=14026300&q=병인양요
올해는 윤3월이 있어서 초파일이 아직 한달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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